9일 친(親)러시아 성향인 아흐마트 카디로프 대통령의 피살로 역대 체첸 민선 대통령 4명 중 3명이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반군을 이끌고 있는 아슬란 마스하도프 전 대통령이 유일한 생존자지만 그도 러시아군의 추적을 받고 있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11일 “카디로프 대통령 피살은 러시아 첩보기관이 2월 카타르에서 반군측의 젤림한 얀다르비예프 전 대통령을 살해한 데 대한 보복”이라고 분석했다.
서로 죽고 죽이는 체첸 대통령들의 불행한 운명은 1991년 독립선언 후 2차례나 러시아군의 침공을 받으면서 반러와 친러 정권이 대립해 온 복잡하고 비극적인 체첸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수난의 반러 지도자들=독립을 주도해 초대 체첸 대통령에 오른 조하르 두다예프 전 대통령은 1994년 러시아가 침공하자 항전을 이끌었으나 96년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사망했다.
뒤를 이은 얀다르비예프 전 대통령은 1차 체첸전쟁(94∼96년)을 승리로 이끌었으나 97년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해 정권을 내줬다. 99년 러시아군이 다시 침공하자 대러 항쟁의 대열에 섰다가 러시아군이 수도 그로즈니를 점령하자 탈출해 카타르에 망명 중 피살됐다. 카타르 정부는 러시아 첩보부대 요원 2명을 범인으로 체포해 현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마스하도프 전 대통령은 여전히 체첸에 남아 게릴라전과 테러로 러시아에 대항하고 있다. 러시아 당국은 체첸을 점령한 후 그의 직무를 정지시키고 인터폴의 ‘테러범’ 명단에 올렸다. 국제법상 체첸은 러시아의 일부여서 그가 이끄는 저항군은 ‘반군’으로 불리는 상태.
▽영화 누린 친러 정부 지도자들=반면 카디로프 대통령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 적극 협력해 온 카디로프 일가의 영화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정부는 10일 그의 장남 람잔 카디로프를 제1부총리에 임명했다. 람잔씨는 대선을 통해 통치권을 물려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금도 친러 민병대를 이끌고 있는 실권자.
1차 체첸전쟁 당시 친러 임시정부의 수반이었던 도쿠 자브가예프도 ‘배신자’라는 오명에도 불구하고 평온한 삶을 누리고 있다. 철수하는 러시아군을 따라 모스크바로 온 그는 탄자니아 주재 러시아 대사를 거쳐 현재 러시아 외무부 차관으로 있다.
▽격화되는 체첸 사태=11일 그로즈니 남부 샬리에서 러시아군이 반군의 공격을 받아 2명이 죽고 5명이 부상하는 등 카디로프 대통령 피살 이후 전투가 다시 치열해지고 있다. 러시아는 “체첸 주둔군을 증원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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