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출판계 단순함의 반란…무명작가가 최대판매기록 세워

  • 입력 2004년 5월 11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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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가 1987년 이래 지켜온 ‘일본 작가 소설 최다판매’ 기록을 최근 한 무명작가가 뒤집어 일본 열도 전체가 놀라고 있다.

일본 쇼각칸(小學館)출판사가 2001년 펴낸 가타야마 교이치(片山恭一·45)의 소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이하 ‘세상의 중심’)가 7일 판매부수 251만부를 돌파했다고 아사히신문이 전했다. 일본 출판과학연구소에 따르면 이는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상권이 세운 역대 최다 판매기록(239만부)을 깬 것이라고 아사히신문은 덧붙였다. 국내에서는 ‘노르웨이의 숲’이 ‘상실의 시대’로도 번역 출간된 바 있다.

쇼각칸출판사는 8일 이 소설이 일본에서 영화로 개봉되는 것에 맞춰 기록갱신 사실을 전격 공개했다.

‘세상의 중심’은 중학생 사쿠타로가 아키(‘가을’이라는 뜻)라는 소녀와 급우로 만나 ‘로미오와 줄리엣’ 연극을 함께 만들고 비밀일기도 교환하면서 순수한 사랑을 나누다가, 아키가 백혈병에 걸리자 가슴 아프게 영별(永別)하는 과정을 담았다.

작가 가타야마는 1986년 데뷔했지만 그간 이렇다할 주목을 받지 못했다. 데뷔 당시에는 ‘고의적으로 어렵게 쓴다’는 지적을 받았던 그가 이 소설은 진부할 만큼 평이하고 통속적으로 썼다. 가타야마 스스로 이 때문에 “대학생과 고등학생인 아들 둘 다 이 소설을 읽지 않았다”고 털어놓았을 정도다.

일본의 논픽션 작가 사노 신이치는 한 대담에서 “이렇게 단순한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되다니 일본의 ‘읽는 힘’이 쇠퇴하고 있는 것”이라며 개탄했다. 가타야마도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원래 제목은 ‘사랑하는 소크라테스’였다. 편집자가 제안한 제목을 따랐지만 (그게 너무 직설적이어서) 아직도 부끄럽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이 책의 경이적 성공에는 이 같은 ‘눈높이 낮추기’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출판사는 평론가들의 찬사를 포기한 대신 2002년 4월 여배우 시바사키 코가 “눈물로 다 읽었다”고 말한 것을 책 표지에 띠로 두르면서 마케팅에 열기를 불어넣었다.

여기에 서점체인인 마루젠 북메이츠의 요코하마 포루타 지점의 야나기 유키코(34)라는 여직원이 소설에 감동받아 “진심으로 눈물이 흐릅니다”라는 포스터를 제작해 서점 입구에 내건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이 책은 지난해 4월부터 베스트셀러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100만부 판매를 넘어선 뒤에는 말 그대로 ‘폭발적으로’ 팔려 불과 반 년 만에 150여만 부가 더 나갔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말 번역 출간됐으며 출판사측은 현재 1만5000부가 팔렸다고 밝혔다. 출판사 관계자는 “한국의 ‘겨울연가’ 제작팀이 ‘세상의 중심’ 한국판 영화판권 계약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일본의 단행본 최다판매 기록은 ‘해리 포터’ 시리즈로 4권이 각 350만∼506만부 팔려나갔다. 한국에서 판매부수 200만부를 넘은 소설은 양귀자씨의 ‘천년의 사랑’(95년) 김정현씨의 ‘아버지’(97년) 조창인씨의 ‘가시고기’(2000년) 등인 것으로 출판계는 추산하고 있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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