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장석도/전쟁 중에도 지켜야할 法있다

  • 입력 2004년 5월 23일 18시 44분


코멘트
전쟁이 얼마나 인간성을 황폐화하는지는 최근의 이라크 사태에서 잘 드러났다. 포로학대 사건의 주역인 린디 잉글랜드 미군 일병은 시골 고등학교의 우등생이었고 대형 할인점의 모범 직원이었지만 전쟁은 순식간에 그녀를 ‘악녀’로 만들어버렸다. 이라크 포로들은 최소한의 인권마저 유린당한 채 그저 ‘고깃덩어리’로 취급됐다. 또 테러단체측이 이 포로학대에 대한 분노의 표시로 미국 민간인을 참수하고 그 장면을 적나라하게 공개한 사건 역시 가히 인간성 말살의 끝을 보는 것 같은 충격을 전해줬다.

지구상에 인류가 등장한 이래 전쟁은 계속 이어졌다. 개인간의 인간성 말살행위는 사회규범에 의해 처벌되지만 국가간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지는 살육 행위는 정당화되고 오히려 영웅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전쟁의 극한 상황에서도 지켜야 할 국제적 규범이 있다. ‘제네바 협약’으로 대표되는 국제인도법이 바로 그것이다.

‘전투능력을 상실한 자는 보호되고 인도적으로 대우돼야 한자다. 투항하거나 전투능력을 상실한 적군 사살은 금지된다. 포로 및 민간인은 생명 및 인권에 대해 존중받을 권리가 있으며 어떠한 폭력이나 보복행위로부터도 보호된다….’

포로학대의 주범으로 떠오른 린디 일병은 “제네바 협약에 대해 들어보지도 못했다”고 했고, 미국 공화당의 제임스 인호프 상원의원은 “나는 포로학대보다는 포로학대에 대해 분노하는 것에 더 분노한다”고 말했다. 국제인도법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것이다.

전쟁의 목적이 승리라지만 인간 밑바닥의 권리마저 맹목적인 명분과 분노로 짓밟는 전쟁은 승자 없는 패자들만의 전쟁이다. 또 그 상처는 오랜 기간 인류사의 부끄러운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인도법 최대의 적은 무지”라고 말한 국제인도법의 거장 장 픽테 박사의 말이 새삼 떠오른다.

장석도 대한적십자사 부산지사 홍보과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