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가 미국인과 영국인 등 22명을 살해한 테러범들을 놓아준 것이 사실이라면 희생자를 낸 국가들과 미묘한 외교갈등을 빚을 수 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일부러 놓아줬다”=25시간 동안 호텔 건물에서 인질극을 벌인 테러범들이 철통같은 사우디 보안군의 포위망을 뚫고 바람처럼 사라졌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게 사실.
미국 CNN방송 인터넷판은 1일 “테러범들이 인질들을 ‘인간 방패’로 삼아 위협하는 바람에 사우디 당국이 도주를 허용했다”고 사우디 고위관리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당시 테러범들은 폭탄 벨트를 차고 있어 인질뿐 아니라 인근에 있던 240여명의 생명도 위협 받고 있었다는 것.
사우디 보안군은 테러범 4명 중 중상을 입은 1명만 체포한 뒤 호텔에서 인질 41명을 구출했다.
영국 더 타임스도 당시 인질의 증언을 토대로 “사우디 보안군과 테러범 사이에 모종의 협상이 있었다”고 1일 보도했다.
이 인질은 “테러범들이 자신들을 놓아주면 인질을 석방하겠다고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며 “인질 몇명이 살해되자 협상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와 AFP통신은 “인질 구출작전이 개시된 지난달 30일 오전 5시반(현지시간)보다 훨씬 빠른 오전 3시경, 호바르에서 10km 정도 떨어진 담맘에서 테러범으로 보이는 3명의 무장괴한이 차량을 강탈했다”고 보도해 테러범들은 이미 달아난 뒤였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사우디 정부는 “테러범과 어떤 협상도 없었다”며 “테러범들이 또 다른 범행을 저지르기 전에 그들을 체포하겠다”고 밝혔다.
▽추적과 도주=테러범들은 호텔을 빠져나간 뒤 몇 차례 차량을 갈아타고 도주한 것으로 전해졌다. AFP통신은 사우디 일간 알 하야트의 보도를 인용해 “사우디 병력이 담맘에 도착했을 때 총격 소리가 들렸다”고 전했으며 현지 주민들은 괴한들이 차량을 타고 도주했다고 증언했다.
테러범들의 도주 과정은 스페인 마드리드 열차테러 용의자들이 경찰 포위망을 벗어날 때와 수법이 비슷해 주목된다. 지난달 4일 스페인 경찰은 마드리드 열차테러 용의자들의 아지트를 급습했으나 이들 중 일부만 자폭하고 나머지는 탈출했었다.
더 타임스는 당시 이들의 탈출 수법이 “적에게 대항할 요원과 도주할 요원을 미리 구분해 탈출할 시간을 번다”는 알 카에다의 ‘교전 교본’에 따른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번 사건에서도 부상당한 테러범이 나머지 3명의 무사 탈출을 위해 인질들을 붙잡고 ‘시간벌기’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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