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25년간 한국차 연구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 입력 2004년 6월 8일 18시 24분


25년째 한국 전통차를 만들며 연구하고 있는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가운데)은 일주일에 두 차례 연구생들에게 다경 등 차 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왼쪽부터 이경희 이창숙씨, 박 소장, 윤성예 이승규씨.-과천=김동주기자
25년째 한국 전통차를 만들며 연구하고 있는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가운데)은 일주일에 두 차례 연구생들에게 다경 등 차 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왼쪽부터 이경희 이창숙씨, 박 소장, 윤성예 이승규씨.-과천=김동주기자
7일 저녁 경기 과천시의 한 아파트. ‘여성 훈장’의 지도하에 어른 몇몇이 서동(書童)처럼 모여앉아 한문책을 소리 내어 읽으며 부지런히 뜻을 새기고 있었다. 이들이 공부하는 책은 8세기 중국 당(唐)의 문인 육우(陸羽)가 쓴 다경(茶經). 차의 기원과 제다법(製茶法) 등을 기록한 고전이다.

25년간 한국 차를 연구해 온 박동춘(朴東春·51)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은 이렇게 일주일에 두 차례 제자들에게 ‘차’를 가르치고 있다. 이들의 ‘차 공부’는 벌써 1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제자들은 5년 과정으로 차와 차 문화를 배우는 중이다.

“흔히 차를 배운다고 하면 다례(茶禮)를 생각하지요. 하지만 우리가 공부하는 것은 다례가 아니라 차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사상입니다.”

박 소장은 한국 차의 중흥조이자 ‘다성(茶聖)’으로 추앙받는 초의선사(1786∼1866)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청명 임창순(靑溟 任昌淳·1914∼1999) 선생에게서 한학을 사사한 그는 1979년 고문헌 정리를 도와주러 전남 해남군 대흥사에 갔다가 초의선사의 법손(法孫)이며 당시 주지였던 응송(應松) 스님(작고)을 만나 차를 접하고 그 매력에 빠졌다.

대흥사에 몇 년 머물며 차를 익힌 그는 한국 전통차(야생차)를 직접 재배하는 것은 물론 한반도 차의 기원과 역사, 한국 중국 일본차의 비교 연구 등 아예 ‘차 전공’으로 나섰다. 특히 ‘한국 전통차의 전형(典型)’을 찾는 작업에 심혈을 기울여 온 그는 ‘구수한’ 향이 나는 한국 전통차가 ‘풋내’ 나는 일본식 녹차와는 다르다고 강조한다. 대량생산종인 일본식 녹차는 1970년대 유행처럼 보급된 일본식 다례와 함께 마치 전통인 양 한국에 자리 잡았다.

“좋은 차는 우선 보기에 맑고 투명합니다. 잘 덖은 차는 생기(生氣·풋내)가 없고 마셨을 때 정갈하고 시원한 느낌이 나지요. 그러면서도 차가 갖고 있는 특유의 뜨거운 기운이 있습니다. 야생차는 구수한 맛이 돌지만 그것이 차맛의 전부는 아닙니다. 구수하면서도 뒤끝에 상쾌한 느낌이 나야 합니다.”

박 소장은 지난해 초 전통 제다법 등 그동안의 연구 결과를 전수할 때가 됐다고 판단해 ‘제자’를 받아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다. 그는 연구생 제자들과 함께 차에 관한 고문헌을 원전으로 찾아 읽고 제대로 된 차의 맛과 향을 구분하는 법을 익힌다. 찻잎을 따는 봄이면 전남 순천시에 있는 그의 차밭을 찾아 제다 실습도 한다.

그의 제자들은 면모가 다양하다. 민속학 전공 박사과정 학생도 있고 게임업체 마케팅 담당자, 대학 강사, 교사, 주부 등. 4년제 대학 졸업 이상의 학력에 어느 정도 한문도 알아야 하는 등 제자가 되는 ‘자격 요건’이 까다롭다.

한양대 대학원 문화인류학과 박사과정인 이창숙(李昌淑·39)씨는 “민속학 중 차문화를 연구하고 있는데 이곳의 배움이 밑바탕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컴퓨터게임업체에서 근무하는 이승규(李昇圭·30)씨는 “서구에서도 유행하고 있는 ‘동양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차를 통해 배우고 싶었다”고 차 공부를 시작한 동기를 밝혔다.

이경희(李景姬·42·교사)씨와 홍윤선(洪允善·45·대학 강사)씨는 각각 일본과 미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면서 ‘한국적 전통문화’에 대해 고민하다 한국에 돌아와 박 소장을 만나 공부를 시작한 케이스. 주부 윤성예(尹聖禮·35)씨는 “차에 관한 공부가 스스로의 내면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렇듯 이들이 한데 모여 수업을 하는 동기나 배경은 저마다 각각이다. 그러나 이들의 관심은 하나, 한국의 전통 차문화를 제대로 배우자는 데 있다.

박 소장은 제자들과 함께 윤독(輪讀)하고 있는 다경의 번역본을 내년쯤 출간할 계획이다. 제자들을 가르치는 것이 곧 연구고 뜻을 새기는 것이 곧 번역이니 교육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출간 준비 작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대로 가면 우리 전통차가 일본차에 밀려 사라질지 모릅니다. 내가 하는 일이 우리 차를 연구하고 보존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과천=주성원기자 swon@donga.com

박동춘 소장은

△1953년 충북 진천생

△1974∼77년 청명 임창순 선생에게 한학 사사

△1979∼90년 응송 스님에게 제다법 등 사사

△2002년∼현재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소장

△2003년∼현재 청명 제자들과 함께 ‘고간찰 연구회’에서 활동

△논문 ‘고려와 서호의 차문화 교류’ ‘한국 차문화의 연원’ ‘대흥사

제다법의 원류’ ‘초의선사의 차풍’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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