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인생의 막을 스스로 내리지 못한다. 레이건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멋지게 마무리한 것 같다.
그는 10년 동안 알츠하이머병을 앓았다. 생활도, 의사표현도 맘대로 하지 못한 힘든 만년이었다. 그러나 이 때문에 많은 미국인의 동정과 공감을 샀다. 사람들의 공감 속에 생을 폐막한 그는 역시 달인이었다.
레이건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과 함께 냉전의 막을 내렸다. 레이건 치하에서 미국은 항상 ‘긍정’ 쪽이었으며 ‘부정’은 늘 미국 바깥이었다.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불렀다. 세계도, 역사도 모두 흑백으로 나뉘었으며 회색은 기피 대상이 됐다.
레이건의 노르망디 방문 때 동행 취재했던 일을 생각해본다.
오마하 해변 절벽 밑으로 넘실거리는 바다. 이를 배경으로 연설하는 레이건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당시 나는 현장 부근에 차려진 기자실에서 이 모습을 TV로 보았지만 현장에 있는 것처럼 생생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TV의 마술사였다.
이라크에서 진창에 빠지며 지지율이 떨어진 부시 대통령은 대통령선거 이전에 레이건 인기의 덕을 보고 싶어 한다. 사실 부시는 레이건의 ‘아들’ 같은 면이 있다. 부시의 대테러전쟁과 이라크전쟁을 통해 드러난 세계관(악의 축)과 안보관(적이냐, 내 편이냐)은 상당 부분 레이건의 세계관(악의 제국)과 전쟁관(별들의 전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위협에 대해 한 치의 공존도 거부하며 절대적 안전보장을 지향한다. 이라크전쟁을 주도한 ‘네오콘(신보수주의자)’도 레이건 시절 등장했다. 두 사람은 ‘미국 예외주의’, 미국인은 신이 선택해준 특수한 국민으로 세계에 대해 특별한 사명을 갖고 있다는 신념을 공유하고 있다.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담당보좌관은 “대(對)이슬람 테러전쟁은 대공산주의 전쟁처럼 1세대 이상 걸리는 이데올로기 투쟁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러나 부시의 싸움이 레이건의 싸움처럼 승리로 막을 내릴까. 열쇠는 그 싸움이 이라크와 중동지역에 평화와 민주주의를 가져오는 계기가 될 것인가, 아닌가에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부시가 해 온 일을 보면 미덥지 않다. 각국의 지리와 역사를 고려하지 않은 채 ‘메이드 인 아메리카’ 모델에 억지로 꿰맞추려 하면 시장도, 민주주의도, 인권도, 교육도 뿌리내리지 못한다.
미국과 유럽 각국간에는 이념과 신념에 있어 커다란 틈이 생기고 있다. 전쟁관(戰爭觀) 만 해도 그렇다. 전쟁이 정의를 가져온다고 답한 미국인은 53%이지만 프랑스인은 12%에 불과하다.
미국은 냉전 종결을 공동작업의 성과가 아닌, 자신들의 승리라고 자랑한다. ‘미국 일극(一極) 구조’와 ‘미국 예외주의’가 강해지더니 끝내 대테러전쟁이란 새 이데올로기에 휘말리고 말았다. 아부그라이브 포로수용소 학대사건은 이런 사태 전개의 무서움을 보여준다. 이번 전쟁, 아니 어떤 전쟁도 회색의 영역을 갖고 있다는 점도 새롭게 깨우쳐 주었다.
영화에 ‘끝’이 있듯 레이건도 막을 내렸다. 지금 미국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레이건 신화의 막을 내리는 것이 아닐까.
후나바시 요이치 일본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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