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건 전 대통령의 장례식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10일 워싱턴의 러시아 대사관에서 워싱턴 포스트와 가진 인터뷰에서 미국과의 군비축소 협상과 냉전 종식 과정을 털어놓았다.
“레이건 전 대통령이 당신이나 소련을 위협하거나 양보하도록 강요했느냐. 레이건 전 대통령이 냉전에서 승리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한가”라는 질문에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그것은 진지한 평가가 아니다”고 말했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11일 소개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특히 소련이 패하긴 했지만 나는 미국과 소련 모두가 냉전에서 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40년 이상 지속된 냉전 시기에 미국과 소련이 군비경쟁에 사용한 비용을 거론하면서 “우리는 각각 10조달러씩을 잃었다”며 “냉전이 끝났을 때 우리 모두 승리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레이건 전 대통령의 군비경쟁 압박으로 소련이 군축협상에 나서 결국 냉전이 종식됐다는 통설에 대한 반론인 셈이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소련은 당시 어떤 군비경쟁도 견딜 수 있었지만 이미 충분한 무기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무기를 만들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985년 1월 당시 레이건 대통령은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면서 평화의 중재자가 되기로 결심했는데 두 달 뒤 소련 공산당 총서기로 선출된 나도 평화의 중재자가 되고자 했기 때문에 우리의 이해가 일치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레이건 전 대통령이 평화의 중재자로 역사에 남고 싶어 하게 만든 사람 가운데 가장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은 그의 아내 낸시 여사”라고 말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또 미국이 자신과 협상해 군비를 통제해야 한다고 확신하게 된 것은 세계무대에서의 자신의 초기 성공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1987년 미국 국가안보위원회(NSC) 회의에서 고위 관리들이 ‘고르바초프의 (개혁 개방 정책으로 인한) 신뢰와 명성이 커지는 것은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만큼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는 보고를 워싱턴에서 받았다”고 밝혔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에 대한 세계적 호감을 막아야 한다는 욕구가 미국이 군축협상에 나서도록 촉진했다는 뜻이다.
그는 “내가 소련의 정치 경제 개혁을 추진한 것은 외국의 압력이나 걱정 때문이 아니라 소련이 자유의 부족으로 질식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면서 “우리는 서구에 비해 점점 뒤지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구는 새로운 기술과 생산성 시대를 열고 있었지만 소련은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자원을 갖고 있으면서도 국민에게 치약도 제공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부끄러웠다”고 덧붙였다.
워싱턴=권순택특파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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