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쓰와 삼성SDI의 특허권 공방을 연상케 하는 일본-대만업체간의 다툼은 엉뚱한 방향으로 불똥이 튀었다. 일본 최대의 슈퍼마켓 체인인 자스코를 운영하는 유통업체 이온이 소송 제기에 발끈해 샤프 제품을 매장에서 치우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온은 작년 말 둥위안전기와 PDP TV의 일본 내 독점 판매계약을 하고 지금까지 4000여대를 팔았다. 대만 TV의 가격은 일본 제품의 절반에 불과해 찾는 고객이 많다. 이온측은 “샤프의 주장대로라면 우리는 소비자들에게 불법 제품을 판 셈이 된다”며 “선의의 피해자를 생각하지 않은 샤프의 자기중심적 행동으로 수십년간 쌓아온 이온의 브랜드 가치가 훼손됐다”고 주장했다.
샤프측의 입장에서 이온은 PDP TV, 에어컨, 냉장고 등을 연간 70억엔(약 700억원) 이상 판매해 온 ‘큰 손’. 샤프는 부랴부랴 담당 임원을 이온 본사로 보내 거래중단 조치를 철회해줄 것을 요청했다.
일본 경제계의 주목을 끈 유통업체와 제조업체의 힘겨루기는 문제가 된 지 이틀 만에 샤프의 사과표명으로 일단락됐다. 샤프 제품은 다시 이온 매장에 진열됐고, 분이 풀린 이온 경영진은 법원 결정이 나올 때까지 둥위안의 TV 판매를 중단키로 약속했다.
친소(親疏) 관계를 따지자면 이온으로선 거래를 튼 지 반년도 안 된 대만업체보다는 샤프 쪽이 더 가까울 것이다. 특허권 분쟁에서 ‘제3자’인 이온은 왜 자신과 별 상관이 없는 문제에 그토록 흥분했을까.
전문가들은 유통업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업체마다 소비자들의 신뢰를 잃지 않으려 애쓰는 경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설명한다. 이온 경영진은 특허분쟁이 장기화돼 자사 이미지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을 염려해 ‘선제 행동’에 나섰다는 것이다.
이온과 샤프가 벌인 해프닝은 일본 전자업체가 특허권 보호에 얼마나 열심인지, 유통업체는 신뢰 유지에 얼마나 필사적인지를 확인시켜 준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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