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는 김선일씨 사건에 처음부터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외교력의 한계를 드러낸 데 이어 거짓말까지 한 셈이 돼 도덕적인 비난을 면키 어려운 실정이다.
▽외교부의 KO패=외교부 직원 2명이 AP통신측으로부터 김씨 피랍에 관한 확인 요청을 받고도 이를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은 채 무시한 것은 공무원으로서의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정확한 진상은 감사원 조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외교부의 이 같은 업무 처리는 이라크 추가파병을 앞두고 교민 안전에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외교부의 기강 해이가 어느 수준이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문제의 직원 2명 중 “기억이 희미하지만 전화를 받은 것 같다”고 진술했다고 신봉길(申鳳吉) 대변인이 밝힌 직원은 공보관실 소속이다.
AP통신 기자가 전화를 건 3일 외교부 중동과에 보고된 이라크 내 한국인 피랍 실종자는 없었다. 따라서 그 직원이 “피랍자는 없다”고 답변한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이름이 김선일로 발음된다’는 질문을 받은 만큼 주무 부서를 통해 현지 공관이 확인하도록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외교부의 발표 직후 외교관들은 절망감 속에 입을 닫았다. 한 중견 외교관은 “할 말이 없다. 아무 것도 묻지 말아달라”고 전화를 끊었다.
▽조변석개(朝變夕改)=진실게임 이틀째인 25일 외교부가 보여준 행태도 떳떳하지 못했다. 외교부가 조사를 거쳐 두 외교관의 ‘자백성 진술’을 들은 것은 이날 오전이다.
그러나 외교부는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AP통신은 접촉한 외교부 직원의 이름을 공개하라”고 거듭 촉구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진술을 확보하고도 오히려 AP에 큰소리를 친 것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신 대변인은 쏟아지는 내외신 기자의 질문에 “감사원에 자료를 제출했으니 할 말이 없다”는 말만 10차례 가까이 반복했다.
오후 7시40분 발표 때에도 외교부는 ‘변명’을 앞세웠다. 감사원 조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려다 일부 언론보도 등으로 인해 밝히게 됐다고 설명했을 뿐 민감한 현안에 대해 ‘오리발 내밀기’로 일관한 것에 대해선 사과하지 않았다.
외교부의 태도는 ‘내 식구의 허물을 내 손으로 발표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해석되나 책임 있는 행동과는 거리가 멀다.
▽파장과 전망=정부의 공직기강 확립 조치 및 외교안보라인 개편이 불가피해 보인다. 25일 정치권에서는 반기문(潘基文) 외교부 장관, 고영구(高泳耉) 국가정보원장의 사표 제출 가능성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감사원 조사에선 외교부 직원이 AP측과 나눈 대화내용의 확보가 급선무다. 외교부 직원이 “기억이 희미하다”고 밝히고 있어 AP측 통화자의 협조가 필요하지만 AP측이 한국 정부를 난처하게 만들 ‘조사 협조’에 응할지는 미지수다.
외교부는 이번에 드러난 여러 문제점으로 인해 부 창설 후 최대 위기에 처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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