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머 행정관은 또 20여명의 이라크인을 각 부처 감찰관 등으로 임명해 주권이양 이후에도 이라크 과도정부를 미국의 ‘수렴청정’ 아래에 두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막판 무더기 법령 제정=주권이양을 보름 앞둔 시점에서 14일 브리머 행정관은 97개의 법령을 공포했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27일 보도했다. 이 법령들은 주권이양 이후에도 유효하며 이야드 알라위 내각 각료 과반수가 반대하지 않으면 이라크 헌법에도 포함된다.
또 브리머 행정관은 이라크 과도정부 각 부처에 5년 임기의 감찰관을 임명했으며 통신과 방송, 증권부문 등을 관장할 위원회도 설치했다. 그는 공무원들의 부패를 기소할 권한을 지닌 공직자비리조사위원도 한사람 지명했다.
이라크군 출신들은 퇴임 또는 사임 이후 18개월간 공직 취임을 불허하고 무기 판매자들에게는 최소 30년 징역형을 선고하도록 했다. 방사능 물질을 규제할 ‘방사능 규제처’와 이라크 생화학무기 과학자들의 생계를 도울 ‘비확산 재단’ 등도 설립했다.
▽이라크의 미국화 지향=최근 공포된 법령들은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정책을 준거로 삼았다. 사형 선고를 금지하고 세율의 상한을 15%로 하며 지적재산권의 불법복제를 불허하고 15세 미만 청소년의 노동을 규제한 것 등이 대표적이다.
이중에는 긴급 상황에서만 자동차 경적을 울리도록 하고 운전 중에는 운전대를 두 손으로 잡도록 하는 교통법규도 들어있다. 뿐만 아니라 반도체 설계권리를 보호하도록 산업디자인법 개정안도 공포됐다.
워싱턴 포스트는 “무장세력의 저항이 심해 바그다드 공항에 상용기의 이착륙도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새로 공포된 법령들은 이라크를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찬반 논란 거세=이라크 관리들조차 최근 법령들은 주권이양 후에도 미국이 통제권을 행사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비난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애미 호손 연구원은 “이들 법령은 막후에서 만들어져 이라크인들이 준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정당이 무장 민병대와의 연계는 물론 자금도 지원받지 못하도록 한 선거법을 놓고 의견이 크게 엇갈린다. 이 선거법은 7명으로 구성된 선거관리위원회에 정당과 정당이 내세우는 후보자들의 적격 여부를 판단하는 권한을 부여했다.
주안 콜 미시간대 교수는 “선관위는 특정인이 싫어하는 후보자들에게 부적격 판정을 내릴 수 있다”며 “마치 이란의 혁명수호위원회와도 같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브리머 행정관은 최근 공포된 법령들은 이라크를 민주적으로 개혁하고 낡은 법체계를 개선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진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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