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이양식'…환호도 축하도 없없다

  • 입력 2004년 6월 28일 23시 16분


국민의 환호도 없었다. 축하 행렬도 없었다.

주권을 이양하는 미국 쪽에서 2명, 영국 1명, 이양 받는 이라크 과도정부에서 3명 등 6명만이 달랑 참석한 조촐한 행사였다.

국민적 축하와 전 세계의 축복을 받아야 할 이라크 주권이양은 이렇게 초라하게 ‘도둑 결혼식’을 치르듯 이뤄졌다. 28일 오전 10시26분(현지시간)이었다.

▽전격 이양 배경=당초 주권이양 예정일인 30일 저항세력의 공세가 집중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해석된다. 저항세력과 테러조직들은 주권이양 행사를 방해하기 위해 최근 차량폭탄 테러와 외국인 납치테러를 저질러 왔다.

주권이양을 앞둔 저항세력의 공세가 워낙 거세 점령기간을 1년 연장하는 방안까지 검토될 정도였다.

전격적인 주권이양은 폴 브리머 미군정 최고행정관과 이야드 알라위 총리가 논의한 결과였다. 두 사람은 10일 전인 18일 조기 주권이양 가능성을 협의하기 시작했다. 밀고 당기는 협상 끝에 일요일인 27일 주권이양을 이틀 앞당기기로 합의했다.

브리머 행정관은 조기 주권이양 계획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테러조직에 이 소식이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측근 25명 중 6명에게만 알렸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도 일요일 당일에 보고해 승인을 받았다.

미국은 조기 주권이양으로 이라크인들의 사기가 크게 올라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군 점령하에서 좌절감을 맛보던 이라크인들이 나라를 스스로 운영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에 테러가 줄어들기를 기대한다.

▽이양된 ‘주권’의 의미=과도정부는 주권이양으로 계엄령 선포, 통행금지 실시 등 법적 수단을 동원할 수 있게 됐다. 또 정규군 및 경찰, 정보기관 창설 등 안보와 치안유지를 위한 기구설치 작업도 할 수 있다.

그동안 불가능했던 대사 등 외교사절의 파견과 외국 대사의 신임장 제정 등의 업무도 재개해 국제무대에서 이라크를 스스로 대표할 수 있게 됐다. 부시 대통령은 이미 공식 외교관계 수립을 위한 서한을 가지 알 야와르 대통령에게 보냈다.

과도정부는 24일 26개 부처 중 11개 부처의 업무를 연합군 임시행정처로부터 넘겨받음으로써 전 부처 업무를 인수한 상태였다. 과도정부 각료들은 주권이양식이 끝난 직후 취임식을 갖고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갔다.

하지만 국방 및 자위에 관한 주권은 미흡하다. 미군을 비롯한 다국적군은 그대로 남아 이라크 정규군과 함께 치안 임무를 맡는다. 다만 그동안 미군의 지휘 아래 운영돼 온 연합합동사령부(CJTF-7)는 해체되며 이라크 주둔 다국적 군사령부(MNF)와 다국적 군단사령부(MNC)가 역할을 대신한다.

테러조직의 공세와 외국인 납치 살해협박이 그치지 않아 과도정부가 주권을 얼마만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과도정부가 주권이양 문서 ‘접수’에 그치지 않고 진정한 주권을 세우기 위해 어떻게 이라크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낼지도 주목된다.

이 진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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