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BBC의 오마르 라제크 이라크 특파원은 주권이양을 전후한 바그다드의 표정을 BBC 뉴스 홈페이지에 온라인 일기 형식으로 게재했다. 다음은 그 요지.
#6월 25일 오후 6시, 바그다드
주권 이양일이 다가오면서 온갖 소문이 무성하다.
어떤 사람은 이라크 과도정부가 주권을 이양받는 날에 방화와 약탈이 이라크 전국을 휩쓸 것이라고 말한다. 약탈범들은 현장에서 총살될 것이라는 소문도 있다.
이라크 과도정부는 주권이양 예정일인 30일은 ‘공포의 날’이 아니라 ‘기쁨의 날’이 될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오늘 모든 이라크 신문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6월 30일, 우리는 국가를 되찾는다’는 내용의 전면광고가 실렸다.
#6월 26일 오후 8시, 바그다드
폭발과 폭음이 일상화됐다. 차량폭탄은 시도 때도 없이 터진다. 이제 바그다드 시내를 돌아다니는 것은 여간 위험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저녁이 되면 몇몇 이라크인은 위험을 무릅쓰고 외출하기도 한다. 위험에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이리라.
#6월 27일 오후 8시, 바그다드
그린존에 위치한 연합군 임시행정처(CPA) 본부를 방문했다. 이라크인들은 그린존을 ‘미 중앙정보국(CIA)의 왕국’이라고 부른다.
주권이 이양되면 그린존은 일반인에게 공개된다고 한다. 따라서 그린존 내 바리케이드와 검문소가 한창 철거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반대였다. 예전보다 더 많은 검문소가 생겼고, 무장군인들도 도처에 보였다.
CPA 대변인은 “그린존만큼 안전이 확보된 곳이 없어 그린존 내 건물을 미 대사관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6월 28일 오후 6시, 바그다드
예정보다 이틀 빨리 주권이양이 이뤄졌다. 바그다드 거리에서는 아무런 축하 행사도 열리지 않았다. 시위도 없었고, 현수막이나 깃발 등도 보이지 않았다.
시민들은 주권이양을 충격적인 뉴스로 받아들였다. 한 할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주권이양으로 좋은 일이 생기길 기도한다. 더 이상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 중년 남성은 주권이양을 단지 ‘쇼’일 뿐이라고 했다. “미국의 보호 아래 어떻게 이라크 총리가 힘을 가질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한 젊은이에게 과도정부에 대한 바람을 물었더니 “과도정부는 감옥 문부터 열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이라크인들은 뭔가 큰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기대를 높게 잡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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