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전인평/아랍음악을 아십니까

  • 입력 2004년 7월 2일 18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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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5월 아랍음악 현지조사를 위해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중부 이스파한으로 가는 버스 안이었다. 갑자기 한 남자가 일어나 “승객 여러분! 한국에서 온 학자가 도둑을 만나 점심을 굶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이것은 정말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우리가 그냥 있어서야 되겠습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터키를 떠나 테헤란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5시였다. 이란 사람의 정직과 친절에 방심했던 모양이다. 노천카페에서 차 한잔 마시는 동안 짐 두 개 중 하나가 없어졌다. 공들여 수집해 놓은 연구자료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여행자수표까지 몽땅 잃어버렸다.

이스파한으로 가는 도중, 끼니때가 되어 모두 식사를 위해 버스에서 내렸지만 나는 약간의 돈은 있었음에도 속이 편치 않아 버스 안에서 쉬고 있었다. 한 남자가 버스에 오르더니 왜 식사를 않느냐고 물었다. 상황을 설명했더니 이 남자는 다짜고짜 우선 밥을 먹자며 나를 이끌고 가 식사를 사주었다.

그리고 버스가 다시 출발하자 내 얘기를 하면서 모금운동을 한 것이었다. 민망하고 쑥스러워 그러지 말라고 제지했더니 그 사람은 친구와 함께 나를 위한 후원회(?)를 조직하고 나머지 내 연구 일정을 책임지겠노라고 제의했다. 그 친구들 덕분에 이란 민속 음악인을 쉽게 만나고, 영어를 잘 하는 사람도 만나 순조롭게 조사를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아랍음악을 조사하면서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유럽음악의 뿌리가 아랍음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십자군전쟁 시기 아랍은 유럽 어느 나라보다도 학문이 발달했고 아랍어는 학문언어로 자리 잡고 있었다. 아랍음악은 스페인으로 전파돼 거기서 꽃을 피웠다. 그것이 12세기 전반 스페인 코르도바의 음악학교가 유럽음악의 메카로 부상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당시 ‘아랍-스페인’의 음유시인 음악은 이전에 듣지 못하던 아주 새로운 것이었다.

아랍의 악기 우드(Ud)가 동쪽으로 전파되어 비파가 됐고, 서쪽으로 가서는 류트(lute)로 개량되어 아랍음악은 전 세계로 확산됐다. 그래서 세계, 특히 유럽의 옛 악기와 음악을 조사해 보면 아랍에서 영향 받은 것이 많다. 영화 타이타닉에도 아랍음악의 체취가 들어 있다. 서민들이 탄 3등 선실에서 다프(daff)라는 큰 북이 강렬한 리듬을 연주하고 사람들이 춤에 취해 있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 다프가 바로 아랍악기다.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양금은 서양에서 왔다고 양금(洋琴)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이란의 달시머가 조선시대 영조 때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다. 달시머는 유럽으로 건너가 피아노로 발전했다. 이처럼 서양음악의 뿌리에는 아랍음악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양음악사는 이를 감추고 있다. 서양학자들이 이것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필자 같은 문외한도 이집트 카이로의 도서관에서 한 시간 만에 이런 내용의 책 5권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역사 왜곡은 일본 사람만 했던 게 아닌 셈이다. 유럽에서 유럽인들이 배우는 서양음악사는 그렇다고 치자. 한국에서 가르치는 서양음악사에서조차, 그것이 의도적인 것이든 아니든, 왜곡된 역사를 그대로 가르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전인평 중앙대 국악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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