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 감사장은 그가 지난달 24일 오키나와현청에 내팽개치고 온 것이었다. 내용은 오키나와현 이토만시에 세워진 ‘평화의 초석’에 많은 한국인 희생자 이름을 새길 수 있도록 도와준 것에 감사한다는 것이었다.
‘평화의 초석’은 태평양전쟁 때 오키나와에서 숨져간 각국 전사자 20여만명의 넋을 달래고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검은색 화강암 1200여개에 전사자 명단을 새겨 병풍처럼 배치한 곳이다.
홍 교수는 95년 이 ‘평화의 초석’에 마련된 한국인 징용자 위령비를 발견하고는 충격을 받았다.
“경상북도에서 끌려왔던 노무자와 일본군 위안부 등을 합치면 어림잡아 1만5000명 이상의 한국인들이 이곳에서 숨졌는데 달랑 54명의 이름만 적혀 있었어요. 반면 일본 미국 영국 대만 희생자비에는 20만여명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습니다.”
홍 교수는 오키나와현을 통해 일본 후생성이 보관하고 있던 한국인 희생자 454명의 창씨개명된 이름과 본적지를 확보했다. 이후 그는 이를 들고 국내에 들어와 전국을 누비면서 명단의 신원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그리고 매년 6월 23일 위령제가 열리기 전 비석에 새로 확인한 이름을 새겨 넣는 각명식(刻名式)에 참여했다.
그러나 1998년 자민당 소속 오다 마사히데(大田昌秀)가 오키나와 지사로 선출되면서 한국인 희생자 명부확인 사업을 일방적으로 중단하려 했다. 당시 일본 언론의 성토로 이는 무산됐지만 한 해도 빠짐없이 치러졌던 각명식은 사라졌다. 그리고 올 6월 23일 위령제가 끝난 뒤 오키나와현이 ‘내년부터 조사를 확대하기 위해 일단 사업을 중단한다’며 감사장을 주겠다고 나선 것. 454명 중 424명은 신원이 확인돼 이름이 새겨졌고 아직 30명은 미확인 상태다.
“현 상태에서 사업을 중단하겠다는 것은 더 이상 한국인 희생자 신원 확인을 할 의사가 없다는 뜻이죠.”
이후 그는 강력한 항의의 뜻을 밝히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를 한 뒤 귀국했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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