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올 2월 의뢰해 구성된 영국의회의 이라크전쟁 진상조사위원회(버틀러 위원회)도 14일 이라크전쟁 결정 과정에서 자국 정보기관을 비난하는 비슷한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어서 미국과 영국의 행정부는 곤경에 처할 것으로 보인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이 때문에 지난달 사임까지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적 정보 실패”=미 상원 정보위원회 소속 위원 18명이 만장일치로 채택한 이 보고서는 “CIA의 잘못된 정보 평가는 이라크가 그런 무기를 갖고 있다는 집단적 사고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1990년대 초 이라크 정부가 알 카에다와 접촉했으나 이라크가 테러 공격에 관련됐거나 지원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또 WMD와 관련된 정보들의 모순이 무시됐다고 덧붙였다.
팻 로버츠 정보위원장(공화당)은 “정보당국은 전쟁 전에 후세인이 생화학무기를 쌓아두었고 10년 안에 핵무기를 보유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면서 “오늘 우리는 이런 평가가 틀렸음을 알았으며 이는 세계적인 정보 실패였다”고 밝혔다.
정보위 민주당 간사인 제이 록펠러 의원은 “행정부는 전쟁에 돌입하기 위해 잘못된 정보를 이용했다”면서 “만일 의회가 지금 알게 된 것을 그때 알았다면 전쟁을 승인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보 실패는 앞으로 몇 세대에 걸쳐 미국의 국가안보에 지장을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요 내용=511쪽짜리 이 보고서는 “이라크가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우라늄을 구입하려고 시도했다는 문서는 조작된 것”이라고 밝혀 미 행정부의 WMD 보유 주장을 일축했다.
“최소 7개의 이동식 생화학무기 공장을 보유해 수백만명을 죽일 수 있는 생화학무기를 비축했다”는 미 행정부 주장에 대해서도 이 보고서는 “믿기 힘든 한 사람에게 의존한 정보에 불과하고 생화학무기 비축 주장은 과장됐다”고 밝혔다.
미 행정부는 “이라크가 장거리 유도미사일과 WMD 살포용 무인항공기를 개발 중”이라고 주장했으나 이 보고서는 “미사일 개발 정보는 사실이지만 무인항공기 개발은 부정확하다”고 판단했다.
▽왜 잘못된 정보가 나왔나=미국과 영국이 정교한 이라크 정보망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검증 절차 없이 서로의 정보에 의존해 온 것이 문제점. 미국은 이라크 안에서 활동하는 요원이 거의 없어 영국 요원의 첩보를 토대로 정보 분석을 해야 했다. 조지 테닛 전 CIA 국장조차 “어째서 좋은 이라크 정보는 영국의 해외정보국(MI6)에서만 들어오느냐”고 한탄할 정도였다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11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2002년 말 MI6의 이라크인 요원 2명이 이라크의 WMD에 관한 정보를 보고했지만 이 정보의 진실성은 현재 크게 의심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워싱턴=권순택특파원 maypole@donga.com
이 진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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