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 이후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가 ‘탈레반과 알 카에다의 연계’를 이유로 공격했고 서구식 민주정부를 구상했다는 점에서 아프간은 이라크의 ‘모델케이스’라 할 만한 곳.
▽겁나서 선거 못한다=아프간 선거관리위원회는 9일 “올 9월에 치를 예정이던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각각 10월 9일과 내년 4∼5월경으로 연기한다”고 밝혔다. 올 6월에서 한 차례 연기됐다가 또 미뤄진 것.
탈레반 잔당 등 무장세력은 미국의 지원을 받는 정부 수립에 반대하며 조직적인 선거 방해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주 동부 잘랄라바드에서는 폭탄 테러로 여성 선관위 관계자 2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다쳤다. 지난달 25일에는 무장세력이 민간인을 수색한 뒤 투표자 등록카드를 갖고 있던 16명을 살해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러니 아프간 사람들은 겁이 나서 유권자 등록도 못하고 있다. 자불 지방에서는 대상 인구의 10%도 안 되는 1만1000명만이 등록했다. 유권자 등록 마감일은 6월 30일이었지만 이때까지 선거 연령 국민 1050만명 중 560만명만 등록한 상태였다. 등록 마감일은 8월 말로 연장됐다.
선거관리 직원들을 살해하겠다는 위협이 담긴 전단지도 나돈다. 유권자 등록 사무소는 남부 아프간의 50개 지역 중 18개에서만 겨우 활동하고 있다.
치안이 유지되는 곳은 수도 카불 등 일부 대도시뿐. 이라크에는 미군 14만명이 주둔하고 있지만 아프간 주둔 미군은 1만7000명뿐이다. 아프간 국민군(ANA)은 12일에야 첫 훈련을 받았다. 선거 때까지 군 병력 2만명과 경찰병력 3만명을 육성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실현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의석 배분을 결정하는 데 필수적인 인구 통계나 투표용지 인쇄, 운반 등 투표를 위한 기술적인 여건이 미비한 것도 선거가 미뤄지는 이유다.
▽치안 불안으로 재건도 꿈=탈레반 세력은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세력을 회복하면서 미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다. 민간인 희생도 커 1년간 약 1000명의 아프간인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일 구호요원 3명이 무장세력의 공격으로 숨진 후 ‘국경없는 의사회’는 아프간 활동을 중단했다. 또 다른 구호단체 관계자는 “책정돼 있는 구호 자금도 불안한 치안 때문에 제대로 집행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프간 의료서비스 중 3분의 2는 외국 구호기관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올 3월 유엔개발계획(UNDP)은 “아프간에 대한 경제개발 지원을 크게 확대하지 않으면 마약에 대한 경제의 의존성으로 인해 다시 테러리스트들의 온상이 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인구 규모가 비슷한 이라크는 아프간에 비해 약 10배가 많은 개발 지원을 받고 있다. 아프간에 대한 지원 규모(국민 1인당 67달러로 추산)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248달러)나 동티모르(256달러)보다도 훨씬 적다.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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