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1월 21일. 백악관 상황실에서 국가안보위원회 회의가 끝나자마자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을 부속실로 따로 불러냈다. 질문은 간명했다. 장관은 이라크에 대해 어떤 전쟁계획을 세워놓고 있는가? 부시 대통령의 요구는 직선적이었다.
“그걸(이라크전) 시작합시다.”
그로부터 1년4개월 후인 2003년 3월 19일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전 개전을 선언하는 대국민연설을 했다.
현직 워싱턴포스트 편집부국장으로서 당대의 탐사보도 전문기자로 꼽히는 저자는 이라크전의 전개과정을 규명하는 이 책의 첫 장에서 전쟁이 이미 9·11테러 이전에 기획된 것임을 드러낸다. 9·11은 그 기획에 방아쇠를 당기도록 계기를 부여한 것일 뿐이었다.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취임 초부터 전 세계에 걸쳐 기획된 68개의 전쟁계획을 뜯어고치는 데 골몰했다. 변화의 핵심은 ‘과거의 계획을 새로운 시대상황에 맞게 속전속결형으로 압축하는 것’이었다.
“테러리스트들은 끊임없이 기술과 시간을 바꾸는 데 우리는 늘 꽁무니만 쫓아다니다보면 방어가 불가능해요. 그래서 우리가 먼저 그들에게 행동을 취해야 합니다. 선제공격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미국 역사상 최초의 선제공격인 이라크전 발발 4개월 반 전에 럼즈펠드가 인터뷰에서 밝힌 이 말을 저자는 잊지 않고 인용했다.
저자는 전쟁 결정과정에 직접 관여한 외교안보장관들, 백악관 측근 참모들, 국무부 국방부 중앙정보국의 인물 등 75명을 인터뷰했다. 그중에는 3시간에 걸쳐 녹음인터뷰에 응한 부시 대통령과 럼즈펠드 장관도 포함돼 있다. 조사와 인터뷰에 소요된 시간만 1년.
개인비망록, 달력, 일지, 전화메모 같은 ‘딱딱한’ 증거 외에 정책결정자들의 저녁식탁에서 벌어진 한담 등에도 저자는 귀 기울였다. 정책결정의 보이지 않는 역학관계를 만들어내는 각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서였다. 좀체 속내를 드러내지 않지만 알 카에다 타격에 집착하는 매파 딕 체니 부통령, 외교적 협상 가능성을 접지 않아 체니와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는 콜린 파월 국무부 장관, 지독하게 꼼꼼하며 레슬링선수 출신답게 상대를 압박하지만 때로는 기묘할 정도로 방관자적 태도를 유지하는 럼즈펠드 장관, 그들 사이의 마찰음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곤 하는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
부시 대통령은 저자와의 단독인터뷰에서 이 책의 역사적 의미가 “내가 어떻게 전쟁결정을 내리게 됐는가가 아니라 미국이 전쟁수행 방식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을 뉴스로 다룬 것”이라고 예견했다.
저자가 특별히 방점을 두지 않았지만 한국 독자로서는 스쳐 지나갈 수 없는 한 대목. 럼즈펠드 장관이 손질하고 있는 68개의 전쟁계획 중에는 작전계획 5027호인 ‘한국전쟁 계획’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라크전과 더불어 ‘두툼하고 제대로 형태라도 갖춘’ 10개의 전쟁계획 중 한 개다. 원제 ‘Plan of Attack’.
정은령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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