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김태수/한국화랑, 치밀한 기획 아쉽다

  • 입력 2004년 7월 16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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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디 벨트’지(紙)는 최근 한국국제아트페어(KIAF·6월 22∼27일) 행사가 끝나기도 전에 세계 미술시장을 향해 그 성과를 알렸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의 사이에 있으며 이번 미술시장은 국제화로 가는 좋은 미래의 길이 될 것이다. 여기에 출품된 작품들은 수준이 높아 모든 작품이 박물관에 걸린다 해도 손색이 없다”고 칭찬하면서 자국인의 입장에 서서 이번 행사에 참가한 독일 화랑들의 활약을 상세히 소개했다.

이번 행사에 참여한 42개국의 외국 화랑 중 가장 돋보인 활약을 한 것은 독일의 ‘미카엘 슐츠’ 화랑이었다. 슐츠 화랑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현대미술의 정신적 지주이며 리더였던 요제프 보이스를 앞세워 A R 펜크, 안셀름 키퍼, 장 미셸 바스키아, 게오르그 바셀리츠, R 리히터 등 현대 유럽 미술시장에서 각광받는 기린아들의 대작을 펼쳐 놓고 그 가운데 자기 화랑 소속인 한국의 무명작가 서수경씨(27)의 작품을 등장시켰다.

이에 그치지 않고 슐츠 갤러리는 세계적 미술잡지인 영국의 ‘플래시 아트’에 소속 작가들을 광고하면서 그 지면에 2004 KIAF 및 서씨의 작품을 크게 소개하는가 하면 그의 특별 도록을 제작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치밀하고 용의주도한 기획의 산물이자 전시 큐레이팅의 백미였다.

이런 치밀한 기획과 홍보 덕분이었을까. 행사장의 문이 열리자마자 서씨의 200∼300호 대작 몇 점이 순식간에 팔려 나갔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전시기간 중 소위 한국의 메이저급 화랑들이 줄을 서서 서씨 모시기 경쟁을 했다는 점이다.

이번 행사는 한국화랑협회가 주최했지만, 정작 우리는 독일 등과 비교하면 속빈 강정이나 다름없었다. 우리 메이저급 화랑들에선 슐츠 화랑과 같은 기획과 홍보의 노력을 찾기 힘들었다. 그런 점에서 2005 KIAF 행사의 특별전 주제를 ‘독일 현대미술’로 정한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다. 내년에는 유럽의 세계적 화랑 10∼15개가 참가할 예정이다.

이제 세계적인 화랑의 기획력과 홍보력에 맞서서 우리도 당당히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 우선 그들의 작가와 트레이드할 한국의 전도유망한 작가군을 확보해야 하며, 이들의 작업을 세계 미술시장에 널리 알릴 수 있는 평단의 비평문을 준비해야 하고, 세계시장을 향한 홍보 전략도 사전에 수립해야 한다.

우리 미술계와 미술시장에는 1997년 외환위기 사태의 여파가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당시 많은 화랑이 자금난에 봉착하면서 20년 가까이 시행해 온 전속작가 제도가 표류하게 됐고 지금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화랑 전속작가제가 부활돼야 한다. 그러나 이는 자금이 바닥난 화랑들이 자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이기에 국가의 재정지원을 호소할 수밖에 없다.

전문 화랑인이 발탁한 유망한 젊은 작가들에게 ‘기초적인 작업환경’을 보장해 주고 거기서 제작된 미술품을 KAIF와 같은 국제미술시장에 등장시키고, 국내외 시장에 홍보해 외국 화랑 소속 작가들과 서로 교환전을 하거나 트레이드할 때 비로소 세계미술시장에 우뚝 설 수 있는 작가가 태어나는 것이다.

‘문화의 산업화’는 거창한 얘기라고 할지 모르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장기적이고 치밀한 기획이 전제된다면 말이다.

김태수 사단법인 한국화랑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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