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TV 프로그램을 해외 수출용으로 가공하고 수출지원을 해 주는 것이 그의 업무다. 번역과 자막처리, 판매망 확보 등을 지원한다. 1998년 말 이곳이 처음 생길 때부터 센터장을 맡아 왔으니 그는 1990년대 말 시작된 아시아 한류 열풍의 산증인인 셈이다.
거창하게 ‘지원센터’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직원이라고 해 봐야 그를 포함해 단 3명. 하지만 그동안 해외에 수출된 우리 TV 영상물의 90% 이상이 이곳에서 가공됐다. 번역과 자막처리는 물론, 외국어 더빙 작업에 앞서 배경음악과 효과음을 분리하는 작업까지 한다. 아시아 한류열풍을 주도했던 ‘가을동화’ ‘별은 내 가슴에’ ‘올인’ ‘인어아가씨’는 물론 최근 일본에서 배용준 신드롬을 낳은 ‘겨울연가’도 이곳에서 이런 과정을 거쳐 수출됐다.
김 센터장이 ‘영상물수출지원’ 업무를 처음 맡았을 때만 해도 TV영상물의 해외 수출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다시피 했다. 외국의 바이어들은 ME(배경음악과 효과음) 분리 작업을 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웃분’들은 그에 따른 가공비용이 든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초기에는 번역, 자막 처리, 더빙 작업을 모두 수입자측이 하겠다는 경우에만 수출이 성사됐다.
그러나 한류열풍과 함께 영상물 수출에 대한 인식도 개선돼 1998년 1000만달러 수준에 그쳤던 우리 TV 영상물의 해외 수출액이 지난해엔 4200만달러로 급성장했다. 이에 따라 영상물지원센터의 업무도 늘어, 지난해 이곳에서 재가공 등의 지원을 받은 프로그램은 모두 1500여편, 1050시간 분량에 이르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수치가 아니라는 게 김 센터장의 설명이다. 우리 TV 드라마나 영상물이 한국의 이미지 제고에 미치는 효과는 수치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는 것.
“사실 TV 드라마만큼 그 나라의 문화를 외국에 잘 홍보할 수 있는 수단도 없습니다. 수십 억원을 들여 국가 홍보물을 제작해 방송해도 그 효과는 드라마 한 편에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그는 최근 아시아에 편향된 한류 상품의 수출시장 다변화에 관심을 쏟고 있다. 지난달에는 동유럽 시장을 돌고 왔다. 국내에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올인’ 판권을 방송사에서 구입해 올해 하반기부터 알바니아 루마니아 보스니아 등 동유럽 국가에 무료로 제공해 이들 국가의 국영방송에서 방영하기로 했다. 1999년에는 한 독립제작사가 지상파 방송용 3부작으로 제작했지만, 방송사측이 1부만 방영하고 중단한 ‘암, 정복될 것인가’라는 제목의 한의학 관련 프로그램의 남미 수출을 지원해 현지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적도 있다.
“중소 제작사가 만든 프로그램 중 방송사에 납품은 됐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사장되는 프로그램이 적지 않습니다. 그중에는 수출해도 잘 팔릴 것이 많지만 영세한 제작사들이 방송사에 납품할 때 방영권과 함께 판권까지 일괄해 넘기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그는 한류열풍을 지속하려면 시청률을 의식해 방영 횟수를 늘린 일일 드라마 등 완성도가 낮은 프로그램을 밀어내기 식으로 수출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국내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호주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한 그는 유학시절 음악 월간지 ‘객석’의 특파원 활동을 했을 정도로 원래부터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우리 문화상품의 수출 지원을 ‘업’으로 선택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닌 셈이다.
그는 요즘 외국에 나가 보면 저절로 신이 난다고 한다. 자신의 손을 거쳐 수출된 우리 영상물의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한의학 프로그램을 시청한 남미의 암 환자가 한국을 희망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데 보람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조용우기자 woogija@donga.com
김태정 센터장은
▽1962년 대전 출생
▽1987년 한양대 법학과 졸업
▽1991년 호주 시드니대 국제관계학 석사
▽1992∼94년 미 콜로라도주 정부 한국사무소 근무
▽1994∼96년 두산수퍼네트워크 근무
▽1996년 아리랑 TV 공채 1기 입사
▽1998년 아리랑 TV 영상물수출지원센터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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