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범, 미국의 제도적 허점 뚫었다”

  • 입력 2004년 7월 22일 19시 08분


《2001년 9월 11일 민항기를 납치해 미국 워싱턴의 국방부 청사(펜타곤)에 충돌시켰던 테러범 5명 중 4명이 워싱턴 덜레스공항에서 두 차례 이상 검색을 받았으나 무사히 비행기에 탑승했다고 AP통신이 관련 비디오테이프와 함께 보도했다. 미 의회 9·11테러 조사위원회는 22일 미 정부가 국제 테러조직 알 카에다의 9·11테러 음모를 저지할 수도 있었던 기회가 10차례나 있었다면서, 테러범들은 미 정부 안의 ‘심각한 제도적 결함’을 악용했다는 내용을 담은 최종보고서를 발표했다.》

▽공항 검색 무용지물=2001년 9월 11일 덜레스공항. 검색대의 금속탐지기가 잇따라 요란한 경고음을 냈다. 테러범 5명 중 4명이 ‘금속’을 소지한 것으로 나타나 추가 검색을 받게 된 것.

검색요원이 테러범 중 나와크 알하즈미의 가방을 뒤졌으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다른 검색요원은 금속탐지기 통과 때 두 차례나 경보가 울린 마제드 모케드를 따로 불러 휴대용 탐지기로 검사하기도 했다.

알하즈미와 할리드 알 미하르는 국가안전보장국(NSA)이 1999년 초부터 알 카에다와 관련된 것으로 파악한 요주의 인물. 2001년 8월에는 테러범 명단에도 올라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추가 검색을 ‘무사히’ 통과한 뒤 아메리칸 에어라인(AA) 77편에 올라탔다. 그리고 이 비행기는 테러범들에게 납치돼 펜타곤에 충돌했다.

비디오 화면에는 칼이나 날카로운 물건이 나타나지 않았으나 조사위원회는 앞서 중간보고서에서 테러범들이 주머니나 가방에 휴대용 칼을 갖고 있었음이 분명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 비디오를 본 AA 77편 희생자 유족들은 “연방항공국의 세 차례 경고에도 불구하고 항공사가 검색을 느슨하게 한 것이 경악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AP는 항공사와 보안업체를 대상으로 소송을 진행 중인 모틀리 라이스 법률회사로부터 테이프를 입수했다.

▽9·11테러는 제도적 결함 탓=22일 공개된 9·11테러 최종보고서는 테러범들이 항공기 내 취약점과 탑승절차, 조종실 문의 개폐시점을 알아보기 위해 시험탑승까지 해보는 치밀함을 보였다고 밝혔다.

이어 테러범들이 미 정부의 ‘심각한 제도적 결함’을 악용했고 의회 역시 정보기관들을 종합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1998년 알 카에다가 원자폭탄이 투하된 일본 히로시마 수준의 충격적 공격을 기도하고 있음을 미 관리들은 알고 있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조사위원회는 이에 따라 장관급 정보책임자를 신설하고, 대량살상무기(WMD) 밀거래자들을 체포하거나 입국금지, 기소할 수 있는 국제적 공조체제 마련을 촉구했다.

보고서는 이 밖에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 수감자들을 전쟁포로로 대우하지 않은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조치를 비난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9·11테러를 막지 못한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결론지었다.

이진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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