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학파=모하메드는 독실한 이슬람 가정에서 태어났다. 16세 때 ‘이슬람 형제단’에 가입했고 과격한 지하드(성전)에 심취하게 된다. 그러나 1983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의 한 대학으로 유학 가 기계공학을 전공할 때까지 과격함을 행동으로 나타내진 않았다.
86년 대학 졸업과 함께 그는 아프가니스탄에 침공한 옛 소련군에 맞서 싸우는 성전에 뛰어들었다. 3개월 간 전선에서 싸운 뒤 전공을 살려 각종 지원업무를 수행했다. 92년에는 보스니아에 가서 이슬람 전사들을 돕기도 했다. 96년 초까지 그는 카타르의 전력·수자원부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테러 학습’을 병행했다.
▽마닐라 테러구상=그는 세살 밑의 조카 람지 유세프의 도움으로 독자적 테러범이 됐다.
유세프는 93년 미국 세계무역센터 지하주차장에 폭탄을 설치해 6명을 숨지게 한 인물. 94년 두 사람은 함께 마닐라로 가서 테러 모의와 연습을 반복했다.
두 사람은 미 점보 여객기 12대를 이틀간에 걸쳐 태평양 상공에서 폭파시킬 계획을 짜고 폭발물 재료도 구했다.
서울과 홍콩을 거쳐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중에서 목표물을 고르기도 하고 마닐라를 방문하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암살할 계획도 꾸몄다.
모하메드는 차량 폭탄, 정치인 암살, 비행기 폭파, 상수원 독극물 투입 등 ‘백화점식 테러방식’을 구상했다.
▽빈 라덴도 못 말려=96년 모하메드는 아프간 산악지대에서 빈 라덴을 만났다. 그는 이 자리에서 비행기 납치, 충돌 계획을 제안했다. 비행기 10대를 납치해 이 중 9대는 목표에 충돌시키고 자신은 남은 한 대에서 미 정부를 비난하는 연설을 하는 것이었다.
빈 라덴은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그에게 알 카에다에 가입하라고 요청했다. 그는 이 요청을 거부했다. 빈 라덴에게 충성 서약을 하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다른 테러단체들과도 협력할 수 있는 자율성을 확보했다. 그는 “빈 라덴이 9·11 아이디어를 거부했다면 독자 수행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는 9·11을 준비하는 와중에도 뉴욕의 유대인 테러와 이스라엘 공격을 제안할 정도로 의욕이 넘쳤다. 빈 라덴이 ‘9·11에 집중하라’고 핀잔을 줄 정도였다.
9·11 조사위원회는 “모하메드는 스스로를 자본과 인재를 구하는 ‘테러 기업가’라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모하메드는 2003년 3월 파키스탄의 안가에서 미군에게 붙잡혀 구금돼 있다.
이진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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