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적 불안에서 수급 불안으로=올해 상반기 국제 석유시장의 변수는 이라크를 비롯한 중동지역 정정(政情) 불안. 사우디아라비아 내 석유시설에 대한 테러 가능성과 이라크 원유 파이프라인의 파손 등이 가격 급등을 초래했다.
하지만 최근 국제 유가는 빠듯한 공급으로 인해 요동치고 있다. 상반기의 지정학적 위험이 정치적이고 단기적인 변수라면 지금은 수급 불안이라는 악성 시나리오가 시장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수급 상황이 악화된 것은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4월 이후 꾸준히 공급량을 늘리면서 한계 생산량에 거의 도달했지만 석유 수요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기 때문. 이에 따라 국제 석유시장에서는 공급 측면에서 작은 변수만 발생해도 유가가 크게 뛸 것으로 내다보고 투기 자본이 다시 모여들고 있다.
실제로 OPEC의 7월 산유량은 하루 평균 2900만배럴로 잉여 공급량은 불과 60만배럴에 그친다. 이에 따라 추가공급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한 투기 자본이 선물 매집에 돌입해 7월 20일 현재 뉴욕상품거래소(NYMEX)의 매수포지션은 지난달 말보다 2배 이상 많은 3만6000여 계약에 이른다.
한국석유공사 구자권(具滋權) 해외조사팀장은 “OPEC가 유가를 조절할 수 있는 ‘카드’가 없어졌다”며 “이 때문에 유코스의 원유 판매 중단설이 예상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향후 전망=미국 석유시장 분석업체인 ‘인피니티 브로커리지 서비스’의 존 퍼슨 수석분석가는 28일 유가(WTI 기준)가 배럴당 45달러선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지금 석유시장은 수요가 공급을 압도하고 있다”며 “OPEC는 생산 한계치에 근접한 것으로 보이고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눈에 띄지 않던 러시아가 또 다른 일격을 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라파엘 라미레즈 베네수엘라 에너지장관도 이날 “유가가 주로 외부적 요인에 의해 인상되고 있어 OPEC가 이를 막을 능력이 없다”고 털어놨다.
그는 또 “생산중단 명령을 받은 유코스가 실제 원유 공급을 하지 않게 되면 대혼란을 겪을 게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일부에서는 지금과 같은 유가상승세가 단기간에 끝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미국 경제전문 통신사인 블룸버그뉴스는 “유코스로 인해 수출 차질이 빚어진다면 러시아의 다른 업체들이 그 공백을 메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가상승은 한국경제에 부정적 영향이 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유가가 연간 배럴당 5달러 오르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0.3%포인트 떨어지고 물가는 0.5%포인트 오른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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