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수니 삼각지역 내 주요 도시인 라마디. 매일 오후 1시면 확성기를 단 저항세력의 픽업트럭 1대가 나타난다. "오후 2시 전에 상점 문을 닫으시오. 2시가 넘으면 교전이 일어날 겁니다. 우리는 민간인을 해치기 싫습니다."
오후 1시45분. 거리가 텅 비고, 시내를 순찰하던 경찰들이 자취를 감추면서 경찰서도 문을 닫는다. 예고한 시간에 나타난 이라크 저항세력들은 유유히 다음날 해가 뜰 때까지 라마디를 '통치'한다.
하지만 아침에 상점이 문을 열 때면 다시 경찰들이 나타나고, 저항세력들은 후퇴한다. 낮과 밤의 '지배자'가 매일 바뀌는 것이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달 30일 라마디의 상황을 이처럼 전하며 "주권 이양 후 미군이 물러난 도시에서 저항세력과 이라크인 경찰들이 번갈아가며 도시를 접수하는 '어색한 동거'가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현상은 과도 정부가 확실한 치안능력을 확보하지 못해 빚어지고 있다. 반미 감정이 높아 미군의 활동이 주춤했던 팔루자와 사마라 등 수니 삼각지역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활개 치는 저항세력에 가장 불안해하는 인물들은 지역 주지사나 고위 관료들. 미국에 협조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저항세력의 공격 목표가 되고 있다.
실제 팔루자와 라마디가 속한 안바르주(州)의 압델 카림 베르게스 주지사는 지난달 아들 3명이 저항세력에 납치당하자 "아들이 석방된다면 기꺼이 사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치안 유지군의 주적(主敵)개념도 모호해졌다. 라마디 치안 유지군 사령관인 카미스 자심 대령은 "상대가 저항세력인지 미군인지는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다"며 "약탈자와 범죄자들로부터 마을을 지킬 뿐"이라고 말했다.
낮밤의 지배자가 바뀌면서 가장 피해를 입는 쪽은 주민들이다. 지난달 29일 발표된 영국 하원 외교위원회 보고서는 "미국 주도의 연합군이 이라크 치안 유지에 실패하고, 법과 질서가 없어지면서 범죄자와 저항세력들이 활개 치고 있다"며 "이는 이라크 국민에게 끔찍한 결과를 가져다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디지털뉴스팀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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