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 초청으로 11일 한국을 찾은 러시아 거주 독립유공자 유족인 허춘화씨(46·여·화가)와 기 라리사씨(46·여·전력회사 간부)는 12일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독립공원 내 서대문형무소와 동작구 동작동 국립묘지 등을 돌아본 뒤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1907년 13도 연합의병부대 군사장을 지낸 허위(許蔿·1854∼1908) 선생의 증손녀인 허춘화씨와 1925년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현재 국무총리)을 지낸 이상룡(李相龍·1858∼1932) 선생의 외증손녀인 기씨는 현재 모스크바에서 살고 있다. 이번이 첫 한국 방문.
두 집안 모두 1980년대 중반 옛 소련의 개혁 개방(페레스트로이카)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자신들이 ‘카레이스키’(고려인이라는 러시아어)라는 것은 물론 독립유공자 후손이라는 사실도 철저히 숨기고 살았다.
조국의 관심에서 잊혀져 살아온 80여년의 세월은 두 집안에 적지 않은 시련을 안겨줬다.
허위 선생의 네 아들은 중국 연해주에서 태어났으나 1937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를 당했다. 선생의 손자이자 춘화씨의 아버지인 허진씨는 40년대 북한에서 공부하다 51년 반(反)김일성 운동에 연루돼 러시아로 탈출했다.
‘동병상련’의 마음은 두 집안을 맺어주었다. 허위 선생의 넷째 아들인 허국씨는 카자흐스탄에서 이상룡 선생의 손녀인 이훈석씨와 만나 결혼했다. 허춘화씨는 “양가 모두 상대 집안이 투철한 조국애를 가진 명문가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기씨는 “어릴 때 따로 떨어져 살던 허국 할아버지에게 러시아어로 편지를 썼는데 할아버지가 고려어로 답장을 보내셨다”며 “한국말을 못하는 것이 지금도 할아버지께 죄송하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과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 등을 돌아본 뒤 17일 다른 해외 거주 독립유공자 유족들과 함께 출국할 예정이다.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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