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덩샤오핑 실용주의’가 떠오르는 이유

  • 입력 2004년 8월 13일 18시 52분


22일은 덩샤오핑(鄧小平) 출생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중국 대륙은 ‘작은 거인’ 덩의 추모 열기로 달아오르고 있다.

#장면1=1966년 문화혁명의 광기(狂氣)가 중국 대륙을 덮쳤다. 그는 주자파(走資派·자본주의를 따르는 무리)로 몰려 모든 공직을 박탈당한 채 시골 트랙터공장 선반공으로 쫓겨 갔다. 덩은 목에 커다란 나무 팻말을 걸고 거리로 끌려 다녔다.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실용주의 철학인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을 자아비판 해야만 했다.

7년간 인고의 세월을 보낸 뒤 그는 광기가 휩쓸고 간 폐허 위로 복귀했다. 그리고 농민들의 사유재산을 허용하는 ‘조용한 개혁’을 단행했다. 잔존 반대세력에는 ‘가난이 공산주의는 아니다’고 설득했다. 문화혁명을 주도했던 장칭(江靑) 등 4인방을 감옥으로 보냈지만 더 이상의 보복은 없었다. 생산성은 급상승했고 피폐했던 농촌에 활력이 돌았다. 기근도 사라졌다. 대약진운동 이후 버려졌던 공장도 가동됐다. 미국과의 관계도 평온했다.

#장면2=2004년 대한민국. ‘이념’과 ‘과거’라는 낡은 팻말들이 여전히 난립하고 있다. 의문사건 진상규명, 정수장학회 진상조사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이를 38년 전 중국 대륙을 휩쓴 광풍(狂風)과 단순 비교하기는 힘든 측면이 있지만 시대에 뒤떨어진 ‘이념과잉’이 ‘현실’을 압도하는 상황은 닮은 측면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새삼 덩샤오핑의 삶이 조명받는 이유는 그의 실용주의 철학이 혼란에 빠졌던 중국을 강대국의 위치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미 랜드연구소에 따르면 2015년 중국의 GDP는 11조∼12조달러로 미국과 비슷한 규모에 달할 전망이다.

반면 지금 우리사회는 좌우와 세대, 미래냐 과거냐의 논란 속에 홍역을 앓고 있다. 지식인들마저 이분법의 낙인을 피해 몸을 사리고 있는 실정이다.

실사구시(實事求是)가 소시민주의로, 현실주의(現實主義)가 기회주의로 치부되는 사회에서 실용주의의 꽃이 활짝 피어나길 기대하긴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윤영찬 정치부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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