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이루는 여름밤이 이어지고 있다. 열대야 탓만은 아니다. 올림픽 경기 때문이다. 지구 저편 그리스에서 열리는 탓에 결승전 TV 중계는 대개 한밤중에 이뤄진다. 한국과 같은 시간대인 일본에서도 요즘 TV 실황중계를 보느라 밤새는 줄 모르는 이들이 많다. 출근길 지하철 안을 보면 평소보다 조는 사람이 부쩍 늘어났다. 자다 깨다를 반복해서인지 직장에 나와서도 자주 하품을 하고 흡연실에서 도둑잠을 즐기는 이도 보인다. 하지만 잠을 설쳐도 잇단 메달사냥 소식에 일본인들은 그저 즐거운 표정이다.
▷유도 남자 선수가 일본선수단 가운데 처음으로 금메달을 따낸 15일 새벽 TV 시청률은 44%대를 기록했다. 일본인 1억2000여만명 중 5000만명가량이 TV를 보며 열광했다. 그 뒤로도 유도뿐만 아니라 수영, 체조 등에서 잇달아 금메달을 따내자 일본인들은 온통 올림픽 경기 이야기로 요란하다. 일부 학자들은 이 현상을 ‘감동 증후군’이라고 부르고 있다.
▷일본은 미국에 이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지만 침략전쟁을 부인하려는 미덥지 못한 태도 때문에 아시아 국가들로부터 외면당하고, 국제 외교무대에서도 별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경제상황도 예전에 비해 크게 활력이 떨어졌다. 개인생활을 보아도 세계 최고수준의 물가 탓에 그다지 넉넉해 보이지 않고 늘 쫓기듯 지낸다. 일본사회의 이 같은 총체적인 폐색감이 ‘단순한 영웅’을 갈구하게 만들었고 올림픽 열기는 이를 반영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드라마 ‘겨울연가’가 한국에서보다 일본사회에서 훨씬 더 인기를 끈 것도 쉽게 감동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일본인들의 심리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일본의 60, 70년대 연애 드라마와 다를 게 없는 드라마임에도 사회분위기에 딱 맞아떨어지면서 ‘단순한 사랑’이 감동의 소재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감동 증후군’으로 불리는 오늘의 일본사회를 이야기하다 보니 어쩌면 한국은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서로 대립각을 세우고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는 ‘짜증 증후군’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원희 선수의 금메달 획득, 축구팀의 극적인 8강 진출 같은 유쾌하고 시원한 소식이 속속 전해지길 기대해본다.
도쿄=조헌주특파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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