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온건파 주도한 北인권법 왜막나”

  • 입력 2004년 8월 24일 06시 55분


제임스 리치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아시아태평양소위원회 위원장이 지난달 말 당시 신기남(辛基南) 열린우리당 의장에게 보낸 서한은 작금의 한미관계에 대한 함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서한은 리치 위원장이 주도한 북한인권법안이 남북관계만 악화시킨다는 열린우리당 일각의 우려에 대한 미측의 ‘역(逆)우려’를 담고 있어 한미의 대북관 차이를 확인시켜 주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그동안 북한인권법안을 ‘공화국(북한) 붕괴촉진법안’이라고 강하게 비난해왔다.

▽‘유감’ 서한 왜 보냈을까=리치 위원장은 대북강경책을 펴온 공화당 소속임에도 합리적인 온건파의 대표적 인물이란 평가를 받아왔다. 대북 매파인 샘 브라운백 상원의원이 지난해 11월 상원에 제출한 북한자유법안은 미국 내에서도 ‘북한붕괴법안’이라고 불릴 정도로 강경한 내용이 많았지만 리치 위원장의 북한인권법안은 비교적 합리적이란 것이 한국 정부 관계자들의 평가다.

따라서 리치 위원장측은 한국 정부의 의사도 적지 않게 반영된 북한인권법안에 대해 열린우리당 일각에서 반대기류가 형성된 것에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토머스 허버드 전 주한 미국 대사가 지난달 29일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인권법안에 대한 (열린우리당 내) 우려는 법안의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누구나 누리는 인권을 북한 주민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것이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리치 위원장의 이번 서한은 ‘미국 의회 내 대북 온건파가 주도한 법안마저 한국 집권여당에서 반대한다면 온건파가 설 땅은 미국에 없다’는 경고가 담겨 있다는 분석도 있다.

▽고심하는 열린우리당=당 지도부는 리치 위원장의 우려가 전달된 뒤에도 북한인권법안에 대한 당내 일각의 반대 움직임을 무마할 마땅한 대책이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다.

‘북한인권법 반대 성명서’를 준비 중인 정봉주(鄭鳳株) 의원은 23일 “미국에서 ‘여당이 그럴 수 있느냐’며 항의하는 바람에 안영근(安泳根) 제2정조위원장이 매우 곤혹스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 위원장은 이에 대해 “전혀 모르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당 지도부는 이 문제가 한미간의 외교적 현안으로 부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 아래 어떻게든 ‘조용하게’ 문제를 처리하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제가 이슈화되면 자칫 한미관계를 훼손하는 것은 물론 보수-진보의 남남갈등을 촉발할 수도 있고, 집권여당이 정부를 난처하게 만드는 상황마저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훈기자 dreamland@donga.com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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