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전 여름, 모스크바에서 긴급 타전된 쿠데타 소식에 전 세계가 경악했다. 1991년 8월 19일 당시 소련 보수파는 휴가 중이던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 부부를 감금하고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페레스트로이카(개혁정책)로 소련 체제가 뿌리부터 흔들리자 위협을 느낀 보수파가 체제 유지를 위한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개혁과 개방으로 가던 역사의 흐름이 다시 뒤집어질 것인가. 세계는 긴박하게 전개되는 사태를 숨죽이며 지켜봤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급진개혁파 지도자였던 보리스 옐친. 시민들은 그를 중심으로 ‘인간 사슬’을 만들어 쿠데타군에 맞섰다. 옐친은 쿠데타군의 탱크 위에 목숨을 걸고 올라갔다. 그가 러시아 민주주의 수호를 호소하는 사자후를 토하는 장면은 이 드라마의 절정이었다. 결국 3일 만에 실패로 끝난 쿠데타는 오히려 소련 체제 붕괴를 재촉했다. 곳곳에서 뜨거운 민주화 열망이 터져 나왔다. 그해 12월 ‘철의 장막’이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러시아 역사상 첫 시민혁명이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 역사적 사건은 해마다 퇴색해 급기야 올해는 변변한 기념행사조차 없이 지나갔다. 탱크를 맨몸으로 막다가 숨진 청년들의 희생이 무색할 정도다. 당시 주역들도 각자의 길을 가고 있다. 탱크 위에 올라선 옐친 전 대통령을 바로 옆에서 지켰던 알렉산드르 코르자코프 전 경호실장은 최근 회고록에서 옐친의 숨겨진 치부(恥部)를 폭로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시민들의 용기와 희생을 바탕으로 탄생한 옐친 정권이 이후 보여준 무능과 부패가 시민혁명의 의미를 빛바래게 만들었다.
▷옐친 정부가 ‘성공한 정권’이 됐다면 러시아의 8월은 지금까지도 민주화와 개혁의 상징으로 빛나지 않았을까. 국민의 힘으로 군사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화를 이룬 우리에게는 러시아의 8월 못잖게 뜨거웠던 ‘87년 6월’의 기억이 생생하다. 민주항쟁을 이끈 386 주역들은 이제 집권세력에 포진해 있다. ‘과거의 함성’에 집착할 것인가, 진정으로 ‘성공한 정권’을 만드는 길을 택할 것인가. 어느 쪽이 한국판 시민혁명의 정신을 지키는 길인지 러시아 8월 사태의 교훈이 묻고 있는 듯하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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