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반미주의자의 돌팔매▼
방송을 시청한 미 국방장관은 이에 자극 받아 “제기랄, 쟤네 빼버려”라고 소리치며 주한미군의 조기감축을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돌을 던진 학생이야 물론 주한미군을 한반도에서 몰아내고자 한 행동이었겠지만, 스스로도 자신의 주장이 이렇게 빨리 관철될 줄이야 어찌 상상이나 했겠는가.
주한미군의 철수를 주장하는 반미주의자들은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하는 이유를 한반도가 갖는 지정학적 가치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동북아시아의 역학, 즉 강대국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일본이 경쟁하고 대립하는 구도에서 한반도는 미국이 이 지역에서 자국의 이익을 관철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전략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절대 한반도를 자발적으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냉전이 지배하던 시대에는 어쩌면 그런 설명이 맞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70년대 미국과 중국의 화해가 시작되면서 우리와 엇비슷한 여건에 있던 대만에 미군은 더 이상 머물지 않았다. 반미주의자들의 주장이 옳았다면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가지 말라고 했던 대만을 미국은 왜 버렸을까. 나아가 동북아를 포함한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서 그렇게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필리핀을 미국은 왜 포기했을까. 거꾸로 경제대국 일본은 무엇이 아쉬워 아직도 미군을 붙들어 두고 있는가.
냉전이 해체되고 또한 9·11 테러를 겪은 뒤 미국의 세계전략은 변화하고 있다. 공간적으로 특정한 지역에 묶여 있는 지상군 개념보다 언제든지 또한 어디로든지 이동할 수 있는 기동군 중심의 전략이 미국의 국익을 보호하는 데에 보다 효과적이라는 판단이 지배하고 있다. 물론 한반도라고 이러한 전략에서 예외일 수 없고, 따라서 주한미군의 위상은 미국의 필요에 의해 어차피 변화를 겪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남북한 관계 또한 변화하고 있다. 과거의 대립과 경쟁에서 최근엔 화해와 포용으로 정책의 기조가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감히 생각도 할 수 없었던 ‘민족공조’라는 개념이 정부의 외교와 안보 정책에 반영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정책기조가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나라, 특히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정책이 우리 입맛에 맞게 절로 따라와 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최근 시비가 되고 있는 중국과 일본의 과거사 왜곡이 결정적인 증거다. 독도는 물론이고 까딱하면 고구려도 잃을 판이다. 6자회담의 지지부진 또한 우리의 정책적 선택에 따라 국제사회의 질서가 재편될 가능성이 별로 없음을 잘 드러낸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미군이 평택으로 떠나고 수도는 충청도로 간 다음 서울만 덩그러니 남아 북의 핵 위협에 발가벗고 있는 모습일 것이다.
▼‘민족공조’위해 고립 택하나▼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를 국제사회에서 관철하는 노력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가 국제사회에서 과연 실현이 가능한 것이냐 하는 문제를 냉정히 따져 보는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민족공조’라는 목표 때문에 ‘한미공조’를 포기하는 일은 아무리 계산해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적자 선택일 뿐이다. 왜냐하면 국제사회의 현실은 결국 우리가 연못 속의 개구리이지 결코 연못에 돌을 던지는 사람이 아니라는, 아프고 슬픈 현실을 뼈아프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유석춘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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