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가실분, 오리엔테이션 받으세요”

  • 입력 2004년 8월 30일 18시 33분


“명심하라. 철창 안에서는 누구도 친구가 될 수 없다. 오직 자기 일에만 신경 쓸 것. 다른 재소자들과는 눈도 마주치지 말라.”

최근 미국에서 등장한 ‘감옥생활 오리엔테이션 프로그램(IOP)’에 나오는 ‘수형(受刑)지침’ 중 하나다. IOP는 각종 기업범죄로 철창신세를 지게 된 전직 경영진을 주 고객층으로 한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30일 이 신종사업의 생생한 실태를 전했다.

▽‘감옥 생활의 모든 것’ 전수=파이낸셜 타임스의 크리스토퍼 보 기자는 IOP를 직접 체험했다. 약속장소에 찾아가 문을 두드리자 자신보다 체중이 최소한 20kg은 더 나가 보이고 근육질 팔뚝에 문신을 새긴 가이드가 맞아주었다.

가이드는 먼저 “감옥은 명상 수련을 하기에 최고의 장소이며 규칙적인 운동으로 심신을 단련할 수 있는 곳”이라고 서두를 꺼내며 고객을 안심시켰다. 그리고는 감옥은 변화란 없는 장소이며 일거수일투족을 통제받는다고 분위기를 잡았다.

“귀중품은 지니지 마라. 손목시계를 빼고는 모조리 압수당하니까. 손목시계는 값싼 걸 차고 가라. 취사나 청소 등 일거리가 맡겨질 거다. 땀 흘려 열심히 일하라. 밤에 잠이 잘 올 테니까.”

가이드는 감옥 속어도 알려준다. ‘두 자리 난쟁이’는 남은 형기가 99일 미만인 수감자를 뜻한다. 휴지로 만든 말로 체스를 두거나 침대를 붙잡고 팔굽혀펴기를 하는 등 시간을 보내는 방법도 알려준다.

“동료와 다투게 되거든 당신 감방으로 끌고 오라. 상대가 쳐들어왔다는 알리바이를 만들 수 있으니까.”

되도록 피를 흘리지 말라는 조언도 듣는다. 에이즈에 걸린 수감자가 많기 때문. 간단한 호신술도 가르쳐 준다.

점점 의기소침해지는 고객에게 가이드는 말한다. “감옥 안의 불편한 생활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이 IOP의 목표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고객 점점 늘어=IOP는 최근 2년간 연간 12명의 고객을 훈련시켰다. 가이드는 “고객이 계속 증가하는 추세”라며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인사도 있다”고 말했다. 사기, 내부자거래, 기업스파이, 위조, 뇌물수수 등의 화이트칼라 범죄로 감방행을 눈앞에 둔 고객들이다.

특히 2000년 미 증시의 거품 붕괴로 경영진 출신 수감자가 늘어난 것이 IOP 탄생의 배경이 됐다. 나이트클럽 경비원 출신인 스티븐 오버페스트(36)가 수감자에게 호신술을 가르치면서 사업 아이디어를 창출해 냈다. 기본 프로그램은 100시간당 2만달러(약 2300만원)지만 단기 과정도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 기자가 이용한 프로그램은 3시간짜리 속성 코스였다.

이진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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