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중국 다루기’

  • 입력 2004년 9월 1일 18시 51분


유시쿤(游錫곤) 대만 행정원장이 지난달 25일 일본 최남단 오키나와를 ‘비공식’ 방문했다. “남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태풍이 급습해 불시착했다”는 게 대만측 설명. 양국간 외교관계가 끊긴 상태지만 그는 5∼6시간 오키나와에 머무르면서 ‘국빈에 준하는 환대’를 받았다. 오키나와 부지사가 공항에 나와 불편한 점은 없는지 살폈다. 중국 정부는 일본측에 ‘심각한 우려의 뜻’을 전하며 반발했다. 도쿄 외교가에는 대만과 오키나와가 근접거리라는 점을 들어 당시 상황이 불시착할 만큼 절박했는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가 적지 않다.

▷대만문제는 중국 외교의 아킬레스건이다. 중국과 수교한 국가가 대만과 교류할 기미가 보이면 각종 채널을 총동원한 압력공세로 무산시키려 애쓴다. 하지만 일본은 중국의 반발을 예상하면서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대만 카드’를 꺼내 든다. 최근에도 집권 자민당의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등 90여명이 대만 방문을 강행했다. 일본 정부는 리덩후이(李登輝) 전 대만 총통의 방일 허용설을 흘렸다가 중국이 발끈하자 슬그머니 철회하기도 했다.

▷일본은 파워가 있으니 그렇다 쳐도 동남아의 ‘소국’ 싱가포르가 중국을 다루는 방식은 눈여겨볼 만하다. 리셴룽(李顯龍) 총리는 7월 부총리 직함을 갖고 대만에 들러 천수이볜(陳水扁) 총통과 회담했다. 중국이 이에 대한 보복으로 ‘싱가포르 무역박람회’를 취소했지만 그는 예상했다는 듯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한다”며 중국을 달래면서도 대외정책의 독자성을 강조해 국제사회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일본 기업의 한 임원은 “싱가포르의 등거리 외교는 홍콩, 상하이와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서 중국 경제권에 편입되지 않기 위해 택한 생존전략”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 탈북자 및 북핵 관련 이슈는 물론 중국이 몸 달아 있는 대만문제에서도 수세다. 고구려사 논쟁을 계기로 중국을 다시 보게 됐지만 상대방 심기를 거스를 발언이나 행동은 한사코 피한다. 물론 외교가 감정에 휘둘려 카타르시스를 구하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곤란하다. 하지만 덩치에 주눅 들지 않는 싱가포르 외교의 당찬 기상은 배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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