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무장괴한 학교 인질극]러시아 전역 ‘테러 공포’ 속으로

  • 입력 2004년 9월 1일 23시 52분


비행기 2대 추락(8월 24일), 모스크바 지하철역 자살폭탄테러(8월 31일), 학생 및 학부모 250여명 인질극(9월 1일)….

체첸 대통령선거(8월 29일)를 전후로 ‘러시아로부터의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체첸반군의 소행으로 보이는 테러가 잇따르면서 러시아 전역이 ‘테러 공포증’에 빠져들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일 휴가지인 흑해에서 급히 모스크바로 돌아와 대책을 논의했다.

▽인질극 및 자폭테러=체첸반군이나 체첸 독립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무장괴한 20명은 1일 오전 러시아 북(北)오세티야 자치공화국의 한 학교로 난입했다. 검은색 옷에 두건을 둘러쓴 무장괴한은 학생 200여명, 학부모 40여명, 교사 10여명 등 250여명의 인질을 체육관에 몰아넣었다. 학생들은 대부분 초등학교 1∼6학년생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요구사항은 북오세티야와 체첸 공화국 사이에 있는 잉구슈 공화국에 체포돼 있는 체첸반군 30여명의 석방이었다.

현지 언론은 “무장 세력이 전 세계의 주목을 끌기 위해 개학 일에 맞춰 어린 학생들을 인질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최대 관심사는 이번 인질극이 2002년 170명의 사망자를 낸 모스크바 극장 인질극의 재판(再版)이 될 것이냐에 모아진다. 일단 사건발생 직후인 이날 오후 6시 현재 경찰과 무장괴한간의 총격전에 따른 사망자는 괴한 1명, 민간인 8명으로 알려졌다.

현지 테러 분석가들은 조심스럽게 “인질이 대부분 어린 학생들이란 점에서 대형 참사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점쳤다. 괴한들이 “소아과 의사를 불러 달라”고 요구하는 등 어린이 인질에 따른 국제 여론의 악화는 막겠다는 전략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북카프카스 지방의 북오세티야는 인구 67만명의 작은 나라이지만 러시아에 공군기지를 제공하는 등 친(親) 러시아 성향을 보여 왔다는 점에서 테러 대상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31일 발생한 모스크바 자폭테러도 24일 발생한 TU-134 여객기의 테러범으로 지목된 체첸반군의 여동생이 용의자로 추정된다고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이 밝혔다.

▽체첸과 러시아의 악연=이슬람계 수니파가 다수를 이루는 체첸은 끊임없는 분리 독립을 요구하면서 ‘러시아의 화약고’로 불려왔다. 1991년 분리 독립을 선언한 뒤 끊임없는 테러를 감행했고 러시아는 2차례 대대적 침공으로 맞서 왔다.

체첸은 지난달 29일 대통령선거를 치렀고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현직 내무장관인 알루 알하노프가 당선됐다. 그는 당선 직후 “분리주의자인 체첸반군과 협상하지 않겠다”고 선언할 정도로 체첸정부와 체첸반군은 비타협적인 적대관계를 계속해 왔다.

체첸은 인구 80만명가량으로 러시아에 속한 자치공화국. 그러나 러시아와는 인종 종교 언어가 모두 다르다. 수년간 계속된 전쟁으로 수만명의 난민이 발생하고 실업률이 75%에 이를 정도로 소모전을 벌여 왔다. 러시아로서도 인근 카자흐스탄에서 생산되는 원유를 흑해 연안의 도시로 수송하는 송유관이 관통하는 체첸의 독립은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는 자세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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