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느닷없이 ‘동북공정(東北工程)’인가 하는 것을 들고 나와 고구려사가 한국사가 아니라 중국사의 일부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일본에서는 내년에 검인정 역사 교과서를 새로이 정하기에 앞서 도쿄도(都) 교육위원회가 솔선하여 ‘새로운 역사교과서’라는 일본 우익출판사 후소샤(扶桑社)의 역사교과서를 채택하기로 했다. 그 책은 이미 4년 전에 극우교과서라고 해서 일본 국내에서 반대 파동을 낳았을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중국에서도 대대적인 반대 선풍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역사분쟁’ 진원지는 정치권력▼
이 교과서는 2001년 검열을 통과해 시판되기에 이르렀지만 그 안에 기록된 1904∼1905년 러일전쟁 관련 내용 일부만 보아도 그 성격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러일전쟁은 ‘일본이 살아남으려고 생명을 건 장대한 국민전쟁’이었고 일본은 이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자국의 안전보장을 확립’했을 뿐만 아니라 ‘유색인종’으로서 ‘백인제국 러시아’에 승리한 것이어서 ‘세계의 억압된 민족들에게 독립에 대한 끝없는 희망을 안겨 주었다’고 돼 있다.
그러나 이 우익교과서는 11개 중학교만 채택했고, 역사교과서 총발행부수 132만여권 중 불과 524권이 팔려 채택률 0.039%를 기록했다. 그런데 오늘의 일본 정치풍토에서 본다면 내년에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노골적인 압력과 간섭에 의해 이 교과서를 채택하는 학교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한국 내에서도 역사문제는 결코 손쉬운 사안이 아니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그 자신이 출생하기도 전, 일제강점기의 문제를 파헤쳐야 한다고 하고 있다. 이미 여당 중진이 여기에 연루될 것을 두려워해 자리를 물러난 형편이다. 그런가 하면 야당에서는 광복 이후의 사상문제도 검토해야 한다며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 나라는 이제 얼마동안 앞날의 문제가 아니라 과거사 문제로 제자리걸음을 하며 떠들썩하게 될 것 같다.
한국 중국 일본의 3국은 과거사 문제로 국내적으로 또는 국제적으로 충돌을 일삼게 될 것인가. 이 세 나라에서 전개되는 ‘역사분쟁’은 물론 동일한 내용은 아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 문제의 진원지가 바로 오늘의 정치권력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 시점에 역사문제가 역사가들이 아니라 정치권력에 의해 제기되고 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결과가 오늘의 동북아의 상황에서 무엇을 우리에게 가져다줄 것인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라의 정통성을 찾아 나라사랑의 긍지를 고취하겠다는데 누가 감히 이의를 달겠는가.
그러나 문제는 흔히 정부가 가장 취약할 때 이러한 위로부터, 관으로부터의 역사가 강조되기 쉽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오늘 동북아시아의 ‘역사분쟁’이 어떤 정치적 소용돌이를 몰고 올지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취약한 정부 위기타개 수단으로▼
이것은 유럽 여러 나라들이 쓰라린 역사의 과정을 거치면서도 하나의 공동체를 지향해 온 것과는 너무나 다른 양상이라고 하겠다. 유럽은 역사를 공유하고, 심지어 하나의 역사교과서를 사용하기도 하면서 이미 하나의 유럽이 돼 있는데 동북아는 어디로 가려고 하는 것인가. 정치세력들은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얻기 위하여 ‘역사분쟁’을 일삼으려 하는 것인가. 그들이 처한 정치적 위기를 그것으로 넘어서 보겠다는 것인가.
이 지극히 ‘애국적인’ 제안들이 몰고 올 정치적 소용돌이가 두렵기만 하다. 그 세력들은 모두 자기 나라 안에서도 사실은 통합과 협력이 아니라 분리와 대립과 강압을 일삼으려고 하는 것 같다는 점도 일치하는 듯해서 하는 말이다.
지명관 사상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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