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명분으로도 테러는 용납될 수 없다’는 반(反)테러 연대 움직임이 급속히 확산되는가 하면 체첸 독립운동에 대해 초강경 대응으로 일관해 온 러시아 정부의 ‘자업자득’이라는 비판도 있다.
인질극의 배경이야 어찌됐건 현지에서 들려오는 참혹상에 대해선 세계가 경악하는 모습이다. 사망자도 많지만 살아남은 사람들도 대부분 화상을 입었거나 폭탄의 파편에 맞아 후유증이 심각하다고 한다. 절반 이상은 어린이들이다. 러시아 방송에선 의약품과 혈액이 부족하다는 애타는 호소가 계속되고 있다.
이미 미국, 프랑스, 독일, 우크라이나, 이란, 리비아 등 20여개국이 구호에 발 벗고 나섰다. 몇몇 나라는 전세기를 띄워 의약품을 나르고 있고 스페인은 부상한 어린이들을 데려다 치료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북오세티야공화국 주민 대부분은 러시아정교를 믿고 있지만 도움의 손길은 종교나 인종을 뛰어넘고 있다.
우리도 먼 나라의 재난 극복에 동참해 가슴 뿌듯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1999년 터키에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범국민적인 ‘터키 돕기 운동’을 벌여 양국 국민이 심정적으로 한층 가까워졌던 경험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가 유난히 신중한 것 같다. 참극 발생 닷새째인 7일까지 정부 인사 누구도 ‘도움’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물론 돕는 마음은 순수해야 한다. 고통 받는 어린이들을 놓고 외교적 득실을 따지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하지만 국가 관계에서도 ‘은혜와 보은’의 정서는 엄연히 존재한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20일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 한반도 안정을 위한 러시아의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지만 이번 사태에 대해서도 어떤 형태로든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국 정부가 정상회담에 앞서 좀 더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 줄 수는 없을까. ‘작은 정성’이 하늘을 감동시킨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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