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월요시위가 통일 14년 만에 되살아났다. 지난달 9일 옛 동독지역에서 1만여명이 참가한 첫 집회가 열린 뒤 매주 계속되고 있다. 1989년에는 자유를 원했지만 지금은 복지를 요구하는 점이 다르다.
독일 사회는 지금 동서로 다시 갈라지고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양 지역 주민들이 심정적으로는 이미 새로운 분단 상태로 들어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동독지역에서는 서독 수준의 삶의 질을 요구하고, 서독지역에서는 동독에 엄청난 돈을 지원하느라 자신들의 복지가 깎인다는 불만이 크다.
과거 서독 외무장관이었던 한스디트리히 겐셔와 동독 민권투사였던 마르쿠스 메켈은 최근 한 신문과의 합동 인터뷰에서 입을 모아 분열을 경고했다.
“나는 이것을 분단이라고 부르지는 않겠다. 하지만 새로운 동서 충돌의 위험은 뚜렷하다.”(겐셔)
“동독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위 계층이며 동등한 시민이 아니라고 느끼고 있다. 반면 서독 사람들은 동독지역에 너무 많은 지원을 한다고 화가 나 있다.”(메켈)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서로 비하해 부르는 ‘잘난 체하는 베시(Wessi·서독놈)’와 ‘게으르고 불평만 많은 오시(Ossi·동독놈)’의 적대감은 깊어만 간다. 메켈은 “상호 적대감이 적어도 다음 세대까지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달 3일 ‘디 벨트’지의 여론조사에서도 이런 감정은 확연히 드러났다. 서독인의 3분의 1은 동독인이 감사할 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52%는 매년 동독에 ‘퍼주는’ 800억유로(약 110조원)가 너무 많다고 응답했다.
심지어 ‘자유’라는 단어의 정의마저도 양 지역이 다르다. 45∼59세의 서독 주민 가운데 60%는 자유를 ‘직업, 국적, 거주지를 스스로 선택하며 자신만의 목표를 세우는 것’이라고 답했다. 반면 동독지역에서는 ‘낮은 실업률과 무주택률’로 정의한 응답이 47%로 가장 많았다. 요컨대 서독인에게 자유는 개인의 결정과 독립을 뜻하는 반면 동독인에게는 사회적 안정을 의미한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최근 “서독지역에선 왜 우리가 동독을 위해 희생해야 하느냐고 물을 수 있지만 나는 ‘우리는 한 민족이며 하나다’는 점을 거듭 강조할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여론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살림살이가 어려워지면 민족을 앞세운 호소도 먹혀들지 않는다.
통일 14년이 된 독일의 모습은 물리적 장벽이 무너졌다고 통일이 완성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실증적으로 보여 준다. 통일 전 서독 경제는 현재의 한국 경제보다 월등하고, 동독은 현재의 북한보다 훨씬 잘살았다. 다시 말해 통일 후 북한은 동독보다도 많은 지원이 필요한 반면, 한국의 능력은 서독에 훨씬 못 미친다. 그 결과는 오늘날의 독일보다 심각할 가능성이 크다.
과거사 문제로 옥신각신하는 우리 정치인들의 머릿속에 이런 미래지향적 고민이 있는지 궁금하다.
김상영 국제부장 yo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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