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직후 인근 필리핀 정부는 전군과 경찰에 3단계 경계시스템 중 가장 높은 적색 경계경보를 발령하는 등 테러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다시 등장한 제마 이슬라미야=이날 오전 10시반경 자카르타의 대사관 밀집지역인 쿠닝간 지구에서 차량이 폭발하면서 주변에 있던 경찰 트럭이 산산조각이 났다. 목격자들은 “갑자기 땅이 뒤흔들리면서 하얀 연기가 기둥처럼 솟아올랐다”고 상황을 전했다. 폭발이 일어난 곳은 대사관 정문에서 불과 4m 앞이었다. 린달 삭스 호주 외무부 대변인은 이번 테러로 대사관 직원 중 피해자는 없었으며 대사관 건물 유리창이 깨지고 전기가 끊겼을 뿐이라고 말했다.
한국 교민 1명이 가벼운 부상을 입었고 중국인 4명도 부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네시아 경찰은 테러에 동원된 폭탄의 제조법 등을 조사한 뒤 알 카에다의 동남아 지부격인 ‘제마 이슬라미야(JI)’를 배후로 지목했다. JI는 2002년 10월 인도네시아 발리의 나이트클럽 2곳에 차량폭탄 테러를 일으켜 200여명의 사망자(호주인 88명 포함)를 낸 조직.
테러가 발생하자 브루나이 왕가 결혼식에 참석 중이었던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후속 일정을 취소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호주를 겨냥한 테러=이날 테러는 다음달 9일의 호주 총선거를 앞두고 발생했다. 알렉산더 다우너 호주 외무장관은 “자카르타 대사관 폭발 사건은 테러공격이 분명하다”고 단정했다.
특히 이번 테러의 배후가 알 카에다 등 이슬람 테러조직으로 판명될 경우 호주 총선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호주는 이라크에 890여명을 파병했다.
존 하워드 호주 총리는 호주군의 이라크 계속 주둔을 약속하고 있지만 야당인 노동당은 총선에서 승리하면 올해 말까지 이라크에서 완전 철수하겠다고 공언하는 등 이라크 파병이 선거의 최대 쟁점이 되고 있다. 하워드 총리는 필리핀이 납치된 인질 살해 위협에 굴복해 철군하자 “테러에 대한 굴복”이라고 공공연히 비난할 만큼 이라크전의 정당성을 역설해 왔다.
7월 말 ‘알 카에다 유럽지부’라고 주장하는 테러조직은 “이라크 파병 부대를 철수하지 않으면 호주를 피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자카르타·캔버라=외신 종합 연합
빈 라덴과 연계… 동남아 이슬람國 건설목표
■테러배후 지목 JI는
‘제마 이슬라미야(JI)’는 1980년대 인도네시아에서 이슬람공동체로 출범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설립자 가운데 한 명인 압둘라 숭카르(사망)가 오사마 빈 라덴의 알 카에다 테러조직과 연관을 맺으면서 테러조직으로 변신했다. JI의 목표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일대를 통합해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는 것.
인도네시아 경찰의 JI 무력화 노력으로 지난해 8월 JI와 알 카에다의 연락책인 리두안 빈 이소모딘(일명 ‘함발리’)이 검거됐고 JI의 정신적 지도자로 불리는 아부 바카르 바쉬르도 반역죄로 기소됐다. 하지만 JI는 이날 또다시 테러를 감행해 조직이 건재함을 과시했다. 경찰이 이날 용의자로 지목하며 사진을 공개한 아자하리 후신은 2002년 발리와 2003년 JW 메리어트호텔 테러사건으로 수배 중인 인물이다.
영국 레딩대를 졸업한 공학도인 후신은 함발리의 부관이며 ‘JI 폭탄제조 교본’을 만든 폭탄전문가이기도 하다.
이호갑기자 gd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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