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조헌주]NHK ‘금전 스캔들’

  • 입력 2004년 9월 15일 18시 50분


일본의 공영방송 NHK가 직원들의 잇단 금전 스캔들로 도마에 올랐다. 6년여 동안 장기 집권하며 콧대 높기로 유명했던 에비사와 가쓰지(海老澤勝二) 회장은 국회 청문회장에 나와 고개를 숙였다. NHK는 비리 내용를 밝히며 시청자에게 사과하는 1시간짜리 특집도 내보냈다. 하지만 ‘버릇’은 못 버렸다. 국회 실황 중계를 자주해 온 NHK가 자사 회장이 등장하는 청문회는 외면했다. 시청자 항의에 ‘편성의 자유’를 들어 변명하다 청문회 이틀 뒤에야 지각 중계했다. 그런데 3시간 청문회를 40분으로 편집한 데다 국회의원들이 퇴진을 거론하며 회장을 추궁하는 핵심 장면은 삭제했다.

▷금전 관련 물의를 빚은 직원 가운데 전 서울지국장도 있다. 용산구 한남동 일대 술집을 휘젓고 다니며 호기를 부려 ‘한남동의 제왕’이란 별명도 얻었다고 한다. 직원 1만7000여명에 연간 7300여억엔(약 7조3000억원)의 예산을 쓰는 거대 기업 NHK. 임자 없는 회사돈이라서일까, 직원들의 돈 씀씀이가 헤퍼 시청자들은 예전부터 개탄해 왔다. 그런데도 시청료는 늘 오르기만 했다.

▷NHK는 곧잘 영국의 공영방송 BBC와 견주기를 좋아한다. 그동안 ‘실크로드를 간다’ 등 수준 높은 프로그램도 많이 만들었지만 BBC와의 근본적 차이는 관변 체질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BBC는 영국 정부가 이라크 핵무기 관련 정보를 왜곡한 과정을 철저히 추적 보도했다. 반면 NHK는 일본 정부가 반대 여론을 누르고 자위대 이라크 파견을 강행할 때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

▷한국의 공영방송 KBS는 1979년 12·12와 1980년 5·17 두 차례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찬탈한 전두환 정권 때 현재의 틀을 갖춘다. 광고 없는 1TV를 명분으로 시청료를 받고, 2TV로는 광고수입을 챙기는 공영방송 사상 유례 없는 기형적 체제였다. MBC 역시 상업광고를 하나 법적으로는 공영방송이다. 이후 민주화 과정을 통해 한국 사회 각 분야에서 군부독재의 잔재는 사라졌지만 변칙적 공영방송체제는 여전히 성역이다. ‘국민의 방송’ 간판 아래 ‘정권의 방송’을 원하는 권력집단의 행태는 나라를 떠나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도쿄=조헌주특파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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