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학자들 서울서 “고구려는 中역사” 주장

  • 입력 2004년 9월 16일 18시 46분


16일 서울 중구 장충동 소피텔앰배서더호텔에서 열린 제1회 고구려연구재단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한 쑨진지 중국 선양동아연구중심 연구주임(왼쪽)이 최광식 고구려연구재단 상임이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중국이 고구려의 영토와 인구 대부분을 계승했으므로 중국이 진정한 고구려의 계승자’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김미옥기자
16일 서울 중구 장충동 소피텔앰배서더호텔에서 열린 제1회 고구려연구재단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한 쑨진지 중국 선양동아연구중심 연구주임(왼쪽)이 최광식 고구려연구재단 상임이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중국이 고구려의 영토와 인구 대부분을 계승했으므로 중국이 진정한 고구려의 계승자’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김미옥기자
“고구려가 당시 누구에게 귀속됐는가는 역사상의 학술문제이다. 각국 학자들은 자유롭게 서로 다른 의견을 발표할 수 있으나, 현실 속에서 고구려 역사의 일부분이 누구에게 계승됐는가는 오히려 현실의 정치문제이지 우리 학자들이 임의로 변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6일 서울 중구 장충동 소피텔 앰배서더호텔에서 열린 고구려연구재단 제1회 국제학술대회에서 중국 선양(瀋陽)동아연구중심의 쑨진지(孫進己) 연구주임은 중국의 고구려사 귀속 주장의 배후에 정치논리가 작용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그는 동북공정(東北工程)에 중국 정부측 인사들이 참여한 데에 대해 “중국의 특성상 정부의 관여가 불가피해 민간 범위를 넘어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동북공정은 학술연구의 일환일 뿐이라고 강변해 모순을 드러냈다.

쑨 주임은 이날 ‘동북아 각국의 고구려 토지 인민 문화에 대한 계승’이란 발제문을 통해 현재의 국경선에 입각해 고구려사는 남한과 북한의 역사인 동시에 중국의 역사라는 특유의 ‘일사양용(一史兩用)’을 계속 주장했다. 그는 또 “무엇을 근거로 중국 땅에 있는 많은 고구려 후손의 역사와 문화 계승권을 박탈하겠다는 것인가”라면서 “영토의 3분의 2와 인구의 4분의 3을 중국이 계승했으므로 당연히 중국이 주된 계승국”이라고 강변했다.

이에 대해 김정배(金貞培) 고구려연구재단 이사장은 “쑨 선생은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면서 “한국인들이 고구려의 역사를 계승하겠다고 나선 것을 마치 중국 영토가 된 고구려 땅을 되찾겠다고 나선 것처럼 뒤집어씌우고 있다”고 반박했다. 김 이사장은 또 “역사는 일관성을 지녀야하는데 현실 논리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을 어떻게 역사라고 부를 수 있느냐”며 “한마디로 일사양용론은 학문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쑨 주임은 ‘일사양용론에 따르면 식민지 해방 전 인도의 역사가 대영제국의 역사라는 논리 아닌가’라는 질문에 대해 “인도는 현재 영국의 식민지가 아니므로 인도사는 당연히 영국사가 아니다”라며 “만약 고구려 영토가 중국에서 떨어져나간다면 그때 고구려사는 중국의 역사가 아니다”라고 군색하게 답했다.

이날 학술회의에 참석한 다른 나라 학자들은 “고구려사는 한국사의 일부분”이라는 의견을 분명히 밝혔다.

존 던컨 미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는 “민족의 자아상 형성은 역사에 대한 기억으로 이뤄지는데 중국의 사서(史書)는 분명히 고구려를 타자(他者)로 파악하고 있는 반면 한국의 사서는 고구려를 민족사로 분명히 인식해왔다”고 밝혔다. 조선족출신인 방학봉 전 옌볜대 발해사연구소 소장도 고구려 도성의 독자성을 조명한 논문을 발표한 뒤 ‘고구려를 중국 소수민족의 지방정권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내 발제문은 분명 도성이라는 표현을 썼다. 도성은 일국의 수도에 쓰는 표현”이라는 우회적인 말로 동북공정을 비판했다.

몽골 과학아카데미의 오 바트사이한 교수는 “1994년 중국에서 몽골 역사를 왜곡한 ‘외몽골독립의 내막’이란 서적 출간이 외교문제화하자 중국 정부는 ‘정부의 공식입장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면서 “하지만 중국은 바로 이듬해에 다시 몽골의 영토를 중국 영토라고 강변하는 3권짜리 ‘몽골국통사’를 출간했다”고 밝혀 중국의 이중플레이가 고구려사 왜곡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증언했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파문 이후 한국과 중국 학자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서 본격 토론을 벌인 이날 학술회의를 통해 고구려사가 자기들의 역사라는 중국 주장의 불합리성이 다시 한번 분명히 드러났다. 학자와 일반인 등 150여명이 이날 토론회를 지켜봤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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