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카이저 前국무부 아태담당 수석 부차관보 전격체포

  • 입력 2004년 9월 17일 18시 23분


돈 카이저 전 아태담당 수석부차관보
돈 카이저 전 아태담당 수석부차관보
미 국무부 ‘동아태국의 2인자’였던 돈 카이저 전 아태담당 수석 부차관보가 15일 미 연방수사국(FBI)에 전격 체포됐다. 대만에 정보를 유출한 혐의다.

그는 최근 국무부 인사에서 사실상 대만 주재 미국 대표부격인 대만미국협회(AIT) 회장으로 내정된 상태였다.

유창한 중국어 실력에 해박한 전문 지식, 그리고 30년 경험의 베테랑 외교관인 그는 과연 대만의 스파이였을까.

숱한 의문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과 대만 외교가는 ‘카이저 사건’ 파장으로 술렁이고 있다.

▽정보 유출 혐의=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카이저 전 부차관보는 7월 31일 워싱턴 근교 음식점에서 미국 주재 대만 대표부격인 대만경제문화대표실 소속 여성 요원(33)과 이 요원의 상관에게 ‘미 정부의 직인이 찍힌 것’으로 보이는 두 개의 봉투를 전달했다. 9월 4일엔 ‘토의 의제’라고 표제가 붙은 서류를 넘겨준 혐의도 받고 있다.

또 지난해 8월 말 국무부에 보고하지 않고 대만을 방문, 대만 국가안전국 정보요원과 만난 혐의도 있다.

FBI 조사에서 그는 문제의 서류에 대해 대만 정보요원들과 만나기 전 준비하곤 했던 ‘대화 요점’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대만 방문은 아내에게도 알리지 않은 개인적인 관광 목적이었기 때문에 국무부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부인은 전직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이다.

▽동기 및 의문점=카이저 전 부차관보는 2000년 국무부 정보연구국 부국장으로 일할 때도 1급 기밀이 담긴 휴대용 컴퓨터를 분실, 보안 의식이 허술하다는 이유로 30일간 정직을 당한 적이 있다. 정직 조치까지 받았던 그가 왜 상부에 보고도 하지 않고 대만 방문을 감행했는지가 의문의 초점.

대만 언론들은 국가안전국 관계자의 말을 인용 “30년 경력의 외교관이 저지를 만한 실수가 아니다”면서 “사건의 배후가 심상치 않다”고 지적했다.

카이저 전 부차관보가 정보를 유출한 대가로 뇌물을 받았는지 여부와 자세한 동기 등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는 체포된 다음날인 16일 50만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다. 하지만 재판을 통해 유죄가 입증되면 최고 5년형을 받을 수 있다.

▽외교가 및 언론 반응=대만 정부는 미국과의 관계를 의식, 카이저 사건에 대해 미국에 적극 협력할 것이라는 입장을 재차 강조하며 파문 진화에 나섰다.

유시쿤(遊錫坤) 대만 총리는 17일 “미국 주재 대만 정보요원들은 내가 아는 한 불법적인 행위를 하지 않았다”면서도 “이번 사태에 대해 충분히 이해해야 할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만 언론들은 “미 행정부 내 대표적 친대만 인사이자 현재 공석인 대만미국협회 회장으로 내정돼 있던 카이저 전 부차관보의 체포는 대만의 큰 손실”이라는 반응을 보이며 관련 소식을 일제히 보도했다.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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