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전 주석은 2002년 11월 당 총서기를 후진타오 주석에게 물려주고 이듬해 3월 국가주석까지 넘겨 당 정의 최고 직위에서 물러났지만 중앙군사위 주석직은 그대로 유지해 최고 실권자로 간주돼 왔다. 후 주석은 중앙군사위에서 장 전 주석의 아래인 제1 부주석을 맡아왔다.
중앙군사위 주석직이 권력의 정점으로 간주돼 온 것은 마오쩌둥(毛澤東)의 ‘권력은 총구로부터 나온다’는 말이 현실정치에서 줄곧 적용돼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오 자신도 군권을 거머쥠으로써 권력의 핵심에 올랐다.
중국 공산당이 상하이 등 대도시에서 혁명을 시도했다가 실패해 대장정에 올랐을 때 마오는 당의 재정비를 위해 1935년 1월 구이저우(貴州)성 쭌이(遵義)회의를 열었고, 여기에서 군사위 주석에 선출됐다. 앞서 군사위 주석이었던 저우언라이(周恩來)는 군사전술의 과오를 자아비판하고 군사위 부주석으로 내려앉았다.
마오가 당의 최고 직위인 당 주석에 오른 것은 쭌이회의로부터 10년여가 지난 1945년 6월 제7기 1중전회에서였다. 이후 그는 1976년 9월 사망할 때까지 양대 권력을 한몸에 지니고 있었다.
마오의 후계자인 화궈펑(華國鋒)은 군사위 주석과 당 주석을 동시에 물려받았다. 그러나 덩샤오핑이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뒤 군사위 주석은 덩이, 당 주석은 후야오방(胡耀邦)이 맡는 군권과 당권의 분리 현상이 재현됐다.
덩은 1986년 1월 후야오방, 1989년 6월 톈안먼 사태 때 자오쯔양(趙紫陽) 등 자신이 후계자로 지목했던 2명의 당 총서기(1982년 12대에서 당주석제 폐지)를 축출함으로써 군권의 우위를 확실히 입증했다.
덩은 1989년 11월 군사위 주석직을 장쩌민에게 넘겨줌으로써 양대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마오쩌둥 시대’의 구조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장 전 주석은 2002년 11월 후 주석에게 당 총서기를 넘겨준 뒤에도 군사위 주석직은 그대로 유지해 왔다.
베이징=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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