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제4세대 지도자 시대]<中>급변하는 중국의 정치 지형

  • 입력 2004년 9월 20일 18시 55분


장쩌민(江澤民) 전 중앙군사위 주석의 사임과 후진타오(胡錦濤) 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의 승계는 절차에 따라 큰 잡음 없이 진행됐다는 점에서 중국 정권교체의 새 이정표를 세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후 주석은 이 같은 권력 이양의 정통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정치 지형을 짜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2002년 11월 제16기 전국대표대회(16대)에서 후 주석이 당 총서기에 취임한 뒤 이합집산을 거듭하던 파벌간의 합종연횡도 그를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권력 교체의 제도화=장 전 주석은 덩샤오핑(鄧小平)이 정치국 상무위원에서 물러난 2년 뒤인 1989년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자신에게 물려준 전례를 따랐다. 비록 당 내외의 사임 압력과 건강 문제가 있긴 했지만 권력 교체를 제도화하는 전통을 마련했다는 평이다.

과거 마오쩌둥부터 덩샤오핑, 장쩌민에 이르기까지 권력 교체 과정에는 린뱌오(林彪), 장칭(江淸) 등 문화혁명 4인방, 화궈펑(華國鋒), 후야오방(胡耀邦), 자오쯔양(趙紫陽)의 숙청 등이 뒤따랐다.


장쩌민 중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오른쪽에서 다섯 번째)이 19일 군사위 주석직을 사임한 뒤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9명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장 전 주석 왼편으로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우방궈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오른편에는 원자바오 국무원 총리가 각각 자리 잡았다.-베이징=신화 연합

장 전 주석은 19일 제16기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16기 4중전회) 폐막 후 정치국 상무위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후 총서기의 당 중앙 영도 하에 모두 단합할 것”을 촉구함으로써 후 주석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후 주석은 이를 바탕으로 당내 민주화와 투명성 제고, 부패 척결 등 자신의 정치노선을 강력하게 추진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권력구도 재편은 불가피=후 주석이 군권까지 쥐게 된 만큼 각 세력의 이합집산이 뒤따를 전망이다. 2년 전 16대의 중국 정국은 ‘다극화 양상 속의 양극 체제’라는 과도기적 특성을 띠었다.

후 주석을 중심으로 한 공청단(공산주의청년단) 및 칭화방(淸華幇)과 장 전 주석을 정점으로 한 상하이방(上海幇)이 양대 파벌을 형성한 가운데 장 전 주석의 책사였던 쩡칭훙(曾慶紅) 국가 부주석이 이끄는 태자당파, 뤄간(羅幹) 중앙정법위 서기를 교두보로 한 보수파,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중도 개혁파로 나뉘어 있었다.

하지만 이젠 후 주석 중심의 재편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후 주석과 원 총리는 지난해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올해 긴축정책을 둘러싸고 이미 결속력을 과시했다. 상하이방의 핵심이기도 한 쩡 부주석도 후 주석과의 대결보다는 타협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후 주석의 세력 기반으로 차세대를 상징하는 공청단 인물들이 권력 핵심부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베이징(北京) 상하이 시장, 허난(河南)성 푸젠(福建)성 성장 등이 공청단 출신으로 채워졌다.

또 ‘중국의 MIT’로 후 주석의 모교이기도 한 칭화대 출신들(칭화방)은 1950년 이후 차관급만 300명 이상 배출돼 제4세대의 핵심 인맥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보시라이(薄熙來) 상무부장, 쑹더푸(宋德福) 푸젠성 서기, 위정성(兪正聲) 후베이(湖北)성 서기, 시진핑(習近平) 저장(浙江)성 서기, 바이커밍(白克明) 허베이(河北)성 서기 등 5세대 선두 주자들의 물밑 각축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베이징=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江 심복’ 쩡칭훙 제치고 발탁▼

부주석 승진은 서열에 따른 군부 인사라는 인상을 준다. 중앙군사위 내 군부 출신 4명 중 가장 서열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발탁에는 정치적 배경이 더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당초 장쩌민 전 주석이 물러나면 심복인 쩡칭훙 국가부주석이 군사위에 진출, 후진타오 주석을 견제할 것이란 게 일반적 관측이었다.

따라서 쩡 부주석 대신 쉬 상장이 급부상한 것은 후 주석이 의외로 빨리 권력을 장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해석이다.

물론 쉬 상장도 장 전 주석의 ‘애장(愛將)’으로 불릴 정도의 핵심 측근이다. 특히 그는 장 전 주석이 2002년 11월 제창한 ‘3개 대표(당이 사영기업가, 지식인, 노동자 농민의 이익을 대표)’이론의 군내 전파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후 주석 입장에서는 같은 4세대인 라이벌 쩡 부주석보다는 훨씬 편한 상대이다.

랴오닝(遼寧)성 와팡뎬(瓦房店) 시골 마을 출신인 그는 1963년 인민해방군에 입대, 하얼빈(哈爾濱) 군사공정학원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한 뒤 71년 공산당에 입당했다. 이후72년부터 94년까지 지린(吉林)성군구, 선양(瀋陽)군구, 육군 제16집단, 인민군 총정치부 등에서 줄곧 군내 사상공작 업무를 담당했다. 1999년 중앙군사위에 발탁됐으며 2년 전 16대에서 총정치부 주임으로 승진했다.

중국 중앙군사위 수뇌부 명단
직책 제16기 4중전회 (2004년 9월∼)제16기 1중전회(2002년 11월)제15대(2002년 11월 이전)
주석후진타오(胡錦濤)장쩌민(江澤民)장쩌민
부주석궈보슝(郭伯雄) 차오강촨(曹剛川·국방부장) 쉬차이허우(徐才厚·총정치부 주임) 등 3명후진타오 궈보슝 차오강촨 등 3명후진타오 장완녠(張萬年) 츠하오톈(遲浩田) 등 3명
군사위원량광례(梁光烈·총참모장) 리지나이(李繼耐·총장비부장) 랴오시룽(寥錫龍·총후근부장) 천빙더(陳炳德·지난군구 사령원) 차오칭천(喬淸晨·공군 사령원) 장딩파(張定發·해군 사령원) 징즈위안(靖志遠·제2포병 사령원) 등 7명쉬차이허우 량광례 랴오시룽 리지나이 등 4명푸취안유(傅全有) 위융보(于永波) 왕커(王克) 왕루이린(王瑞林) 차오강촨 궈보슝 쉬차이허우 등 7명

베이징=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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