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비슷한 법체계를 갖추고 있고, 법학교육과 법조인 선발 시스템도 비슷하게 운영해 왔던 일본은 올해 로스쿨을 도입해 시행 중이다. 일본의 로스쿨은 미국식 로스쿨을 바탕으로 일본의 현실에 맞게 개조한 것이다.
▽취약한 법률서비스=일본의 로스쿨은 법조계가 아니라 경제계의 요구에서 비롯됐다.
1990년대 초 일본 경단련(우리의 전경련에 해당) 간부들은 일본의 사법을 ‘2할 사법’이라고 불렀다. 법률분쟁의 80%가 국제무대 등 법정 밖에서 발생하고 해결되는데, 일본 사법은 법정 안에서 이뤄지는 20%의 분쟁 해결에만 쓸모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한마디로 법조의 경쟁력이 없다는 것. 이에 따라 10년 가까이 논의를 거쳐 로스쿨이 도입됐다.
일본의 로스쿨은 대학의 법학부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대학원 과정인 로스쿨을 새로 만들었다. 예컨대 도쿄(東京)대의 경우 학부의 법학과와 로스쿨 대학원이 병존한다. 학부의 법학과 졸업자는 2년, 비법학과 출신은 3년 만에 로스쿨을 마친다.
로스쿨을 마치면 변호사 자격시험(‘신 사법시험’이라고 부른다)을 치러 법조인이 되는데, 현행 사법시험(내용도 우리의 사법시험과 비슷함)은 2010년까지는 병행 실시되다가 그 이후 없어진다.
대학은 물론 자치단체나 변호사회도 설치기준만 맞으면 로스쿨을 운영할 수 있다. ‘오미야(大宮) 프런티어 로스쿨’은 도쿄변호사협회가 운영 주체.
▽‘변화의 발화점’=사사키 다케시(佐佐木毅) 도쿄대 총장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도쿄대 로스쿨에 대해 “학부에서 문학과 경제 교육 국제관계 등 다양한 전공을 한 학생들이 들어와 공부하고 있다”며 “로스쿨은 대학가의 새로운 변화의 원점, 발화점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일본 로스쿨 현황을 관찰하고 돌아온 박찬운(朴燦運) 변호사는 “일본 로스쿨에서는 현직 판검사와 변호사 등에 의해 철저하게 실무위주의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도쿄의 한 로스쿨을 가보니 해외 유학을 하거나 직장 경험이 있는 사람이 40%나 되었다”며 “다양한 경험과 전공을 한 법조인이 많이 배출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문제점=일본은 당초 30개 안팎의 로스쿨을 설치해 수료자 대다수가 변호사자격시험에 합격해 2010년 이후 매년 3000명의 법조인이 배출되는 방안을 구상했다.
그러나 로스쿨을 설치하지 못하면 2류 대학으로 전락할 것으로 생각한 대학들의 요구가 빗발쳐 로스쿨이 예정보다 2배나 늘어났다. 4월 문을 연 로스쿨은 68곳, 5676명이 등록했다.
이 때문에 ‘고시 낭인(浪人)’이 사라지는 대신 ‘로스쿨 낭인’이 쏟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최근 일본에 다녀온 대검찰청의 고위 간부는 “비싼 교육비를 들여 장기간 전문교육까지 받은 ‘법조 낭인’이 쏟아진다면 로스쿨의 효율성에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며 “로스쿨은 ‘언제’보다는 ‘어떻게’ 시작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수업료 부담도 만만찮다. 일본 로스쿨의 연간 학비는 사립의 경우 200만엔(약 2000만원), 국립의 경우 80만엔(약 800만원)이다.
조수진기자 jin0619@donga.com
▼“학교 위상 로스쿨 유치에 달렸다”▼
사법시험 45회(2003년)대학별 합격자수(단위:명, 출처:법률저널) | |||
서울대 | 340 | 중앙대 | 22 |
고려대 | 170 | 부산대 | 16 |
연세대 | 84 | 건국대 | 15 |
성균관대 | 54 | 전남대 | 12 |
한양대 | 46 | 한국외대 | 12 |
이화여대 | 28 | 경희대 | 11 |
경북대 | 22 | 전북대 | 11 |
총합격자 수는 905명(10명 이하는 표기하지 않았음). |
로스쿨 도입이 가시화하면서 대학가에도 때 이른 ‘로스쿨 바람’이 불고 있다.
각 대학은 로스쿨 인가 여부에 따라 학교의 위상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서울지역 중상위권에 속하는 그룹. 기본적인 지정 요건인 법대 단독건물 확보는 기본이고, 정원도 경쟁적으로 늘리고 있다.
건국대는 올해 법대 정원을 120명에서 200명으로 대폭 늘렸고 모의법정 전용열람실 법학도서관 등을 갖춘 법대 단독건물을 신축하기로 했다. 연세대 고려대 등도 올해 정원을 늘렸다. 일부 지방대학은 법대 교수들을 검찰 자문위원 등으로 참여토록 독려하고 있다.
교수 확보 경쟁도 치열하다. 성균관대와 한양대가 올해 다른 대학에서 각각 법대 교수 1명씩을 빼내오는 등 우수 교수 확보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일정한 실무경력을 갖춘 변호사나 현직 판검사들도 주요 타깃.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국내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내년부터 서울대 법대 교수로 일하기로 학교측과 얘기가 끝났다고 전했다. 지방대학들도 마찬가지.
해외교류도 활발하다. 연세대는 미국 아메리칸대와 자매결연을 하고 로스쿨 프로그램을 교환 운영 중이며, 미국 노스웨스턴대는 한국에 로스쿨 분교를 설치해 운영 중이다. 경북 포항시의 한동대는 2002년 미국 로스쿨을 모델로 법률대학원을 설립했다.
1963년 이후 역대 사법시험 대학별 합격자수(단위:명, 출처:법률저널) | |||
서울대 | 4900 | 부산대 | 200 |
고려대 | 1500 | 경희대 | 200 |
연세대 | 750 | 전남대 | 170 |
한양대 | 600 | 중앙대 | 160 |
성균관대 | 520 | 단국대 | 160 |
경북대 | 200 | 건국대 | 150 |
미국 로스쿨로 유학을 떠나려는 학생도 크게 늘고 있고, 이미 국내에 진출한 미국 로스쿨도 성업 중이다. 미국 로스쿨 유학상담업체인 ‘아이비 로(Ivy-law)’가 이달 11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연 로스쿨 유학 설명회에는 200여명의 로스쿨 지망생이 모여 성황을 이뤘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이른바 ‘고시촌’엔 현행 사법시험 체제하에서 법조인이 되려는 대학 저학년 학생들이 몰려들고 있다. 고시 전문학원인 ‘한국법학연구원’ 관계자는 “대학 저학년 학생들이 ‘지금 사법시험을 준비할지, 군대를 다녀온 후 로스쿨을 가는 게 나을지’ 등에 대한 문의를 많이 해온다”고 말했다.
조용우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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