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살아보니/앤드루 브램스톤]추석, 명절 이상의 명절

  • 입력 2004년 9월 24일 17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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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온 뒤 두 번째 맞는 추석이다. 추석은 2년 넘게 한국에 살면서 내가 가장 즐겁게 보낸 명절이다.

내 고향 영국에도 추수감사절이 있다. 그러나 간소하게 보내는 영국의 추수감사절과 달리 한국인들은 사나흘 동안 연휴를 즐기며 고향을 찾는다. 고향길에 가족과 친지에게 나눠줄 선물을 양손 가득 챙겨가는 모습은 훈훈하기만 하다. 한국인들의 추석나기를 보면서 나는 한국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인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가족과 친지, 친구 사이의 유대감이다. 그러나 다소 무뚝뚝한 한국인들은 유대감을 겉으로 잘 표현하지 못한다. 추석과 같은 명절이 되면 이런 기회를 ‘핑계’ 삼아 선물을 주고받으며 유대감을 공고히 한다. 추석은 한국인들의 유대감을 강화시켜주는 ‘명절 이상의 명절’이다.

선물은 한국인들이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주요 수단이다. 추석을 앞두고 한국의 대형 상점에 가보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다. 도대체 그 많은 선물세트들은 어디서 나왔는지…. 한국에 온 첫해 백화점 보행 통로까지 즐비하게 진열된 선물세트를 보고 우리 가족은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한국인들은 추석 선물로 주로 생활필수품을 주고받는다. 장식품이 주종을 이루는 영국의 선물 풍습과는 달리 한국인들은 커피 치약 비누 통조림 등 실용적인 물건을 선호한다. 나는 한번의 추석을 치르고 나서야 그런 간소한 선물이 오히려 격식 없이 따뜻한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 같은 외국인들에게 추석 명절이 더욱 의미 있는 것은 한국 친구를 사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추석 때 평소 눈인사만 하고 지내던 이웃집 기족이 송편을 들고 찾아왔다.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송편 맛을 봤다.

그 뒤 우리는 옆집과 쿠키나 빵을 만들어 나누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영국에서는 이웃과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일이 흔하지 않기 때문에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다. 그러나 우리가 정성껏 만든 쿠키를 맛보며 즐거워하는 이웃집 아이들을 보면서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뭔가 오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을 떠나도 오랫동안 기억할 좋은 이웃이 생긴 것도 다 추석 덕분이다.

그러나 내가 주변에서 본 이런 격식 없는 한국인들의 정겨운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도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선물이 불티나게 팔린다는 얘기를 접할 때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추석을 맞아 선물을 주고받는 풍습은 보기에도 좋고 외국인으로서 부럽기도 하지만, 청탁과 뇌물의 의미가 담긴 고가 선물이 오가는 것은 없느니만 못하다. 마음이 깃들지 않고 비싸기만 한 선물은 받는 이의 마음도 공허하게 만든다.

값비싼 선물보다는 꼭 필요한 물건을 정성껏 골라서 선물하는 한국인들을 본받아 올해는 나도 지난 추석 때 미처 준비하지 못했던 감사 카드와 선물을 준비해볼까 한다.

▼약력▼

1959년 인도 뭄바이에서 태어났으며 영국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2002년 서울에 왔다. 한국 가요를 즐겨 들으며, 조만간 5인조 재즈록그룹을 결성해 공연을 가질 계획이다.

앤드루 브램스톤 한국네슬레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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