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오늘]플로리다州 식물인간 안락사놓고 옥신각신

  • 입력 2004년 9월 24일 17시 24분


“우리도 마음으로는 가족들의 슬픔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마음이 법은 아니다.”

미국 플로리다주 대법원은 23일 만장일치로 14년째 식물인간 상태로 병상에 누워있는 테리 샤보(40·여)의 안락사를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다.

샤보씨는 1990년 심장발작으로 심각한 뇌손상을 입었으며 의사들로부터 회복 불능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이후 튜브로 음식물을 공급받는 식물인간 상태로 지내왔다.

남편 마이클 샤보는 아내의 안락사를 원하고 친정 부모는 반대하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환자는 평소 안락사에 관한 입장을 밝혀 놓지 않았다. 이 때문에 재판 과정에서 남편은 아내가 인위적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고 친정 부모는 딸이 살고 싶어 할 것이라고 맞섰다.

1998년부터 남편이 아내의 안락사를 요구하며 청구한 여러 건의 소송에서 법원은 남편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였다. 마침내 지난해 10월 생명줄인 음식물 공급용 튜브가 제거됐다.

그러나 플로리다 주의회는 샤보씨를 살려야 한다는 여론을 의식한 젭 부시 주지사의 요청을 받아들여 주지사가 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튜브를 다시 연결할 수 있도록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을 인정한 ‘테리의 법’을 6일 만에 급조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대법원은 이날 의회와 주지사가 법원 판결을 뒤집으며 만든 법은 삼권분립을 위반한 것이며 안락사 금지는 사생활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고 판결했다.

대법관들은 판결문에서 사건의 비극적인 상황을 인정하지만 판결은 감정이 아니라 법률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워싱턴=권순택특파원 maypol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