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이볜 “양안협상 재개하자”…中에 긴장완화 방안 제의

  • 입력 2004년 10월 10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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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 건국 93주년인 10일 천수이볜 대만 총통은 기념 연설을 통해 중국측에 양안 평화회담 개최를 전격 제안했다. 12년 전인 1992년에도 당시 리덩후이 총통이 불가침조약 체결을 제안한 뒤 양측이 반관반민기구를 내세워 정치협상을 시작한 바 있다.-타이베이=로이터 뉴시스
중화민국 건국 93주년인 10일 천수이볜 대만 총통은 기념 연설을 통해 중국측에 양안 평화회담 개최를 전격 제안했다. 12년 전인 1992년에도 당시 리덩후이 총통이 불가침조약 체결을 제안한 뒤 양측이 반관반민기구를 내세워 정치협상을 시작한 바 있다.-타이베이=로이터 뉴시스
천수이볜(陳水扁) 대만 총통은 10일 제93주년 건국기념일(쌍십절·雙十節)을 맞아 군비통제 협상과 공동 행동강령 제정, 회담 재개 등 양안 긴장완화 방안을 중국에 제의했다.

중국은 천 총통의 제의에 대한 내부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으나 대만문제 전문가들은 “말은 좋은데 내용이 없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반면 미국은 천 총통의 제안을 전향적인 것으로 평가했다.

▽“전쟁 피하기 위해 대화하자”=천 총통은 이날 건국기념일 연설에서 “중국의 정권과 인물이 바뀐 지금 양안은 지혜를 모아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발전을 창조하기 위한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며 “1992년 10월 홍콩회담을 기초로 양안 협상을 재개하자”고 제안했다.

1992년 10월 중국공산당 제14차 전국대표대회에서 “하나의 중국을 전제로 양안의 정식 담판을 포함한 어떠한 문제에 대해서도 대만과 논의할 수 있다”는 정치공작보고를 채택한 뒤 양측은 민간대표기구를 내세워 교류활성화 등 4개항의 홍콩 합의를 만들어낸 바 있다.

천 총통은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면 양안 모두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입게 된다”며 “양측은 군비 통제를 위한 실질적 조치를 진지하게 검토하는 한편 대만해협의 평화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공동 행동강령’을 만들자”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이날 중국을 ‘중화인민공화국’이란 공식 국명으로 부르면서 “2300만 대만 국민이 동의한다면 중화민국(대만)과 중화인민공화국간에는 어떤 형태의 관계 발전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현재 행정부문에서 ‘양안 인원·화물 전세기 편리화 방안’을 마련 중”이라며 “중국 당국과 이른 시일 내 협상을 진행해 ‘삼통(三通·항공 선박 우편 직통) 정책’을 진일보 시키겠다”고 덧붙였다.

▽중국,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대만정책 전담기구인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은 천 총통의 제안을 분석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대만문제 전문가들은 “천 총통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그의 말은 모두 공허한 정치적 수사일 뿐”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중국 사회과학원 대만문제연구소 리자취안(李家泉) 교수는 “92년 홍콩회담은 ‘하나의 중국’ 정신을 기초로 하고 있지만 그는 회담 재개만을 제안했을 뿐 이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면서 “양안 긴장은 그가 대만 독립을 추구했기 때문이며 이런 그의 인식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반쪽 행사로 끝난 쌍십절=천 총통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 대만 제1야당인 국민당은 이날 타이중(臺中)에서, 제2야당인 친민당은 가오슝(高雄)에서 별도의 기념식을 가졌다.

이들은 “헌법 및 국호 개정으로 국체를 바꾸려는 자들이 중화민국을 전쟁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고 민진당 정부의 독립 추진 움직임을 비난했다.

:쌍십절(雙十節):

1911년 10월 10일 허베이(華北)성 우창(武昌)시에서 청조 통치에 맞서 일어난 무장봉기에서 비롯됐다. 신해혁명으로 기록된 이 봉기로 청나라 통치와 수천년간 이어온 왕조정치가 막을 내리고 쑨원(孫文)이 이끄는 민주공화정의 중화민국이 탄생했다. 훗날 중국대륙을 통일한 장제스(蔣介石)가 이날을 국경일로 선포했다.


베이징=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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