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기대하며 한국에 첫발을 디딘 것은 1996년.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는 마천루들, 빼곡한 아파트단지,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들에 둘러싸인 서울 생활의 시작은 낯설었지만 어느덧 이 도시에 푹 빠져 그 역동성에 동참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1년에 서너 차례 미국 본사로 출장을 가는데 언제부터인가 내가 태어나고 자란 미국에 있으면서도 서울 회사와 집이 더 그리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8년간 경험한 한국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기보다는 ‘잠들지 않는 나라’라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밤늦게까지 불이 켜진 사무실, 불야성을 이루는 동대문시장, 새벽부터 일터로 향하는 자동차들…. 한국은 24시간 쉼 없이 돌아간다.
그런데 묘한 아쉬움이 남는 것은 왜일까. 아마 부임 전 한국에 대해 품었던 동경에 대한 미련 때문이 아닐까 싶다. 타고르는 한국을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든 곳’ ‘지식은 자유롭고, 좁다란 담벼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은 곳’ ‘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해 팔을 벌리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지금 한국의 모습을 보고서도 타고르가 이런 표현을 썼을까. 외환위기 이전이던 부임 초기만 해도 한국인들은 지금보다 훨씬 친밀했던 것 같다. 그러나 국가의 경제적 어려움이 기업의 위기와 가계의 궁핍으로 확산되면서 생활 자체가 경쟁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듯하다.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도 서로 외면하고, 이웃집과 1년이 지나도 인사조차 하지 않으며, 같은 공간에 있어도 휴대전화로 소통하는 한국 사람들을 보면서 경제난이 생활 습관까지 바꿔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점점 메말라 가는 한국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주변 사람들끼리 훈훈한 정을 나누는 ‘이웃사촌’이라는 단어가 나타내 주는 과거의 모습에 향수를 느낀다.
타고르는 한국을 “내 마음의 조국”이라고 불렀다. 그만큼 한국에 대한 애착이 컸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 역시 한국에 큰 애착을 가지고 있다. 하루빨리 경제가 회복돼서 한국인들의 생활이 로봇과 같은 각박함에서 벗어나서 따뜻한 인정이 넘치게 되기를 기대한다.
▼약력▼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나 텍사스 A&M대를 졸업한 뒤 크라이슬러자동차의 중국 일본 대만지사 등에 근무했다. 1996년 9월 한국에 왔으며 현재 주한미상공회의소 부회장, 미래의 동반자 재단 이사, 주한미연합봉사기구(USO) 의장직을 겸하면서 개인적으로 장학재단도 운영하고 있다.
웨인 첨리 다임러크라이슬러코리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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