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경제 전문가들은 한국의 화폐단위 변경과 관련한 논쟁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화폐단위 변경은 일부 엘리트 계층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일반 국민이 경제생활에 불편을 느낄 때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초(超)인플레이션이 부른 화폐단위 변경=KOTRA 이스탄불 무역관 장수영 차장은 터키가 화폐단위를 바꾸는 근본적인 이유는 “수십년간 지속된 초인플레이션으로 터키 화폐 가치가 하락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터키는 1981년부터 작년까지 매년 100%에 이르는 물가상승을 경험했다. 이에 따라 1981년 이후 거의 2년에 한번꼴로 새로운 고액지폐를 발행했다. 현재 터키의 가장 큰 고액권은 2000만 리라(약 15달러). 세계에서 가장 단위가 큰 화폐다.
초인플레로 갈수록 단위가 큰 화폐가 필요해지자 갖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터키에서 19년째 살고 있는 윤여행사의 윤대우 사장은 “화폐단위가 커지다 보니 가게나 상점에서 현금계산이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컴퓨터로 각종 화폐 관련 데이터를 처리하는 데도 애를 먹고 있다”고 설명했다.
▽심리적 안정에 주력하는 터키 정부=화폐단위 변경 과정에서 터키 정부가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은 국민의 불필요한 동요와 인플레 심리를 막는 것. 이 때문에 내년부터 1년간 은행에 구화폐를 가져가면 은행은 서류작업 없이 무조건 신화폐로 바꿔 준다. 신화폐는 구화폐에서 ‘0’ 6자리를 없앴다. 1달러에 해당하는 150만 리라가 1.5리라로 바뀌는 것.
또 기업들이 화폐단위 변경을 이용해 가격을 편법으로 인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두 가지 가격표를 1년간 함께 붙여놓을 것을 법으로 정해 놓았다.
▽국민이 원할 때 해야만 성공=터키 3대 시중은행인 야프 크레디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아흐메트 치멘올루는 “브라질 6회 등 50여 개국이 100여 차례에 걸쳐 화폐단위를 변경했지만 대부분 실패했다”며 “이는 정부가 물가를 잡는 데 실패하면서 새로운 화폐 가치 역시 급속도로 하락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화폐단위 변경은 국민의 일상생활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하기 때문에 대다수 국민이 원할 때 해야만 빨리 정착될 수 있다”며 한국의 화폐단위 변경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일본의 예를 들면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한국은 화폐단위 변경을 서두르기보다 우선 새로운 고액권을 도입하고 화폐단위 변경은 이에 대한 국민의 공감대가 충분히 모아진 뒤에 실시하는 것이 성공 확률을 높이는 길”이라고 충고했다.
이스탄불(터키)=이병기기자 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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