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니 설국이었다.’ 196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인 ‘설국(雪國)’의 첫 문장은 니가타의 시골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는 니가타현 남부의 산간지대에 머물며 이곳을 소설의 무대로 삼았다. ‘고시히카리’라 불리는 이곳 쌀은 눈이 녹아내린 맑은 물로 재배해 밥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일본의 주당들은 청주(淸酒) 하면 ‘구보타(久保田)’ ‘핫카이잔(八海山)’ 등 니가타산(産)을 최고로 친다.
▷니가타현에서 강진이 발생해 수많은 사상자와 10만명이 넘는 이재민이 났다. 전문가들이 대도시를 낀 태평양변의 지진 가능성에만 주목하고 반대편 산간지대는 안전하다고 여겼던 터라 일본열도가 받은 충격은 더욱 크다. 매몰 현장에서는 모자가 꼭 껴안고 숨진 채 발견되기도 하고, 생후 2개월 된 갓난아기가 엄마 젖을 물고 눈을 감는 등 가슴 아픈 사연이 줄을 잇는다.
▷니가타 지진은 전형적인 천재(天災)에 해당한다. 삶의 터전을 잃고 계속되는 여진에 절망한 주민들은 총리와 국회의원들의 방문에도 하소연할 기력조차 없는 듯 망연자실한 표정이다. 사람의 부주의로 빚어진 인재(人災)건,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천재건 재해의 처참함은 같다는 점을 실감한다. 이웃의 정을 담아 니가타 주민들의 아픔을 위로하자. 동시에 바다 건너 한국은 과연 지진에서 안전한지 꼼꼼히 점검해야 하지 않을까. 니가타 지진의 강도가 한국 원자력발전소의 내진(耐震) 설계치인 6.5를 웃돌았다는 사실을 소홀히 넘겨서는 안 된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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