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어제와 오늘]팔 130만 거주민 ‘투쟁의 나날’

  • 입력 2004년 10월 27일 18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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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를 둘러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역사는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는 러시아의 동의 아래 오스만제국을 분할하기로 하는 사이크스-피코(Sykes-Picot) 비밀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은 몇 년 후 시리아 이라크 레바논 팔레스타인을 영국과 프랑스가 각각 분할 지배하는 밑그림이 됐다. 비슷한 시기에 아서 발포어 영국 외무장관은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세워주겠다는 ‘발포어 선언’을 공표해 ‘이-팔 분쟁’의 씨앗을 만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인 1947년 11월 유엔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유대국가와 아랍국가로 나누는 분할안을 결정했다. 이 분할안에 따라 가자지구는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함께 아랍권에 포함됐다. 서안지구에 있는 예루살렘은 주인이 없는 국제도시로 만들었다.

그러나 주변 아랍국의 거센 반발로 분할안은 실현되지 않았다.

영국이 1948년 철수하고 이스라엘이 국가를 선포하자 이집트 이라크 시리아 요르단 등은 전쟁에 나섰다. 8개월의 전투 끝에 가자지구는 이집트가 군정을 실시했고 서안지구는 요르단이 지배했다.

불안한 균형 상태는 1967년 이스라엘이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을 선제공격하면서 무너졌다. 이스라엘은 ‘6일 전쟁’에서 대승하며 가자지구 서안지구 골란고원 시나이반도를 장악했다. 이 중 시나이반도는 1979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으로 이집트에 반환됐다.

1993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와 오슬로 협정을 맺어 가자와 서안지구에서 철수하고 팔레스타인의 자치를 허용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우파는 가자지구를 본향(本鄕)이라고 주장하며 계속 정착촌을 세웠고 팔레스타인은 테러로 맞서왔다.

360km²의 가자지구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드문 지역에 속한다. 팔레스타인 거주민 130만명과 이스라엘인 약 8000명이 21개 정착촌에 살고 있다. 이스라엘 정착촌의 면적은 약 15%. 팔레스타인 거주민 중 33%는 난민촌에서 유엔의 자금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이 진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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