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살아보니/찰스 호건]술자리 왜 강요하나요

  • 입력 2004년 10월 29일 18시 01분


한국과 아일랜드의 공통점 중 하나는 두 나라 국민 모두 술을 즐긴다는 것이다. 아일랜드는 유럽에서 술을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한국 역시 술에 관해서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술 좋아하는 것으로 치자면 한국과 아일랜드는 과히 세계 대표급이다.

아일랜드에서 술은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집에서도 술을 많이 마시고 선술집도 잘 발달돼 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 중에는 애주가들이 많다. 아일랜드의 유명한 극작가인 브렌던 베한은 자신을 ‘음주 문제를 가진 극작가(a writer with a drinking problem)’가 아니라 ‘글 쓰는 문제를 가진 술꾼(a drinker with a writing problem)’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술을 사랑했다.

나는 한국에 살면서 아일랜드 애주가들과 겨뤄도 뒤지지 않을 술꾼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주 맥주 위스키는 물론 보드카에 이르기까지 서울의 애주가들은 열정 넘치는 아일랜드의 애주가들과 대결해도 결코 손색이 없다.

일을 마치고 친구와 함께 하는 여유로운 술 한 잔은 인생의 즐거움이고 약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술에 대한 무모한 도전은 극히 위험하다. 아일랜드 정부는 알코올 중독 치료와 예방에 매년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붓고 있다. 한국 역시 늘어나는 알코올 중독자와 이로 인한 사회적 부작용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는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술에 대한 애정이 여전하다. 특히 값비싼 양주가 날개 돋친 듯이 팔려 나가는 모습을 볼 때면 애주가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움을 느낀다. 값비싼 양주의 소비량이 늘어가는 데에는 그릇된 음주 문화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한국에는 술을 즐기기보다는 즐겨야만 하는, 가끔은 즐기기를 강요당하는 문화가 있었다. 아직도 이런 문화가 어느 정도 남아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최근 와인 동호회 등을 통해 술을 진정으로 즐기려는 움직임이 한국 내에서 생겨나고 있다는 것은 아일랜드에서 온 애주가로서 매우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서 술자리는 단순히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친구를 사귀고 비즈니스를 진행시키는 사회 활동이다. 그러나 이런 사회적 중요성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한국인들은 너무 술을 많이, 그리고 자주 마신다. 한국인들과 유쾌한 술자리를 자주 갖고 싶은 아일랜드인으로서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것은 ‘노(No)’라고 말할 용기와 의지를 가지라는 것이다.

내키지 않는 술자리는 권하지도 말고 거절할 수도 있는 것이 올바른 음주 문화다. 적절한 음주 습관만이 건강을 지키고 무분별한 과소비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술을 무조건 많이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한국의 새로운 음주 문화를 기대한다.

▼약력▼

1974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났으며 PR컨설팅사 에델만의 더블린 지사에서 5년간 일하다 올여름 서울 지사로 옮겼다. 아일랜드에서는 신문기자로도 활동했다.

찰스 호건 에델만 코리아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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